향년 53세 나이로 14일 세상을 떠난 최동원은 선수시절 한국야구의 최고투수로 꼽힐 만큼 대단한 활약을 펼쳤다.
타석에선 타자들은 금테 안경을 낀 최동원의 150㎞를 넘나드는 빠른 볼과 낙차 큰 커브에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최동원은 경남고 재학시절이던 1976년 군산상고와의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승자결승에서 당시 전국대회 최다 탈삼진(20개)을 작성하며 팀의 9-1 대승을 이끌어 주목 받기 시작했다.
대학에 진학한 그는 1학년 시절부터 타자들을 압도했다. 1977년 대학야구리그 결승전에서 상대 성균관대 타자 30명에게 삼진 16개를 뺏어내며 4-0 영봉승을 이끌어냈다.
최동원은 당시 고 장효조, 김일권, 허규옥 등 대학 최고 타선으로 꼽히던 한양대를 상대로 결선리그에서 탈삼진 8개로 틀어막는 등 맹활약을 하며 팀이 춘계리그에서 10승 1무(결승리그 5전 전승)로 우승을 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최동원의 피칭은 대학무대를 넘어 실업팀과의 대결에서도 빛났다. 화려한 대학 1학년 시절을 보낸 그는 2학년이 된 1978년, 백호기와 대통령기에서도 '무쇠팔'다운 투구를 보였다.
특히 대통령기 준결승전에서 최동원은 3시간 20분의 혈투 끝에 43명의 타자를 상대로 안타 3개 볼넷 1개를 내줬지만 16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진가를 발휘했다. 이 대회에서 그는 팀이 우승을 하기까지 혼자 42이닝을 던졌다.
병역문제 등 당시 여건상 미국 무대를 밟지 못한 최동원이지만 경남고-연세대 거치는 동안 속한 팀에서 절반 이상의 역할을 하며 대한민국 대표 투수로 거듭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