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자 프로배구 우리카드의 2025-2026시즌 여정에 마침표가 찍혔다. 먼저 두 세트를 따내고도 내리 세 세트를 내주는 이른바 '역스윕 패배'를 사흘 새 두 번이나 당하며 플레이오프(PO)에서 탈락했다. 그러나 경기장을 가득 메운 우리카드 홈팬들은 허무한 역스윕 패배나 PO 탈락에 대한 아쉬움 대신, 고개 숙인 선수단을 향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박철우 감독대행이 이끈 우리카드는 29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진에어 2025-2026 프로배구 V-리그 남자부 PO(3전 2승제) 2차전에서 현대캐피탈에 2-3(25-22, 25-22, 18-25, 39-41, 12-15) 역전패를 당했다. 1차전에서도 1·2세트를 따낸 뒤 뼈아픈 역전패를 당한 데 이어 이틀 만에 또 한 번 '역스윕 패배' 악몽을 경험했다.
경기 전만 하더라도 박철우 감독대행은 "온전히 100%로 붙어볼 수 있는 상황이 됐다"며 내심 자신감을 내비쳤다. 1차전은 우리카드가 KB손해보험과의 준PO를 치른 지 이틀 만에 열린 경기인 반면 체력적인 열세가 뚜렷했다면, 이번 2차전은 상황이 같아졌으니 해볼 만하다는 것이었다. 박철우 대행은 "양 팀 다 5세트를 하고, 하루 쉬고 경기를 한다. 피로도는 이제 똑같다. 같은 상황이라면 충분히 좋은 경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실제 우리카드는 현대캐피탈을 상대로 1세트와 2세트를 내리 따냈다. 3세트를 비교적 쉽게 내주며 흐름이 끊겼으나, 4세트 중반 한때 7점 차까지 앞서면서 천안에서의 마지막 PO 3차전 가능성을 키웠다. 그런데 4세트 중반 이후 집중력이 떨어진 사이 현대캐피탈의 거센 반격이 펼쳐지면서 흔들렸다. 가까스로 듀스를 만들었고 이후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는 치열한 승부를 펼친 끝에 4세트도 내줬다.
양 팀 합쳐 80점이나 터진 4세트 진행 시간만 무려 57분. 포스트시즌 역대 한 세트 최장 시간 경기가 하필이면 이날 나왔다. 누적된 피로도가 더해지면서 결국 우리카드는 마지막 5세트마저 내주고 또 한 번 '역스윕' 패배를 당했다. 역대 포스트시즌 최장 시간 경기 2위에 해당하는 2시간 48분 혈투, 중요한 순간 집중력을 발휘한 현대캐피탈과 달리 우리카드는 끝내 체력적인 부침을 극복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뼈아픈 역스윕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한 번 같은 패턴으로 패배를 당한 데다, PO 탈락이라는 결과까지 마주한 상황. 우리카드 선수들도 경기 종료 후 하나같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고, 일부 선수는 눈물까지 흘렸다. 더구나 이날은 무려 3510명의 관중이 찾아 매진을 달성한 경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경기장을 가득 메운 팬들은 그런 우리카드 선수들에게 비판의 목소리가 아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시즌 중반까지만 해도 기대하기 어려웠던 '봄배구'를 이뤄낸 박철우 감독대행 체제의 매직,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큰 시즌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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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우리카드는 지난해 말 마우리시오 파에스 감독이 떠나고, 박철우 코치가 감독대행 역할을 맡았다. 3라운드 종료 시점 6승 12패(승점 19), 7개 팀 중 6위에 처진 시점이었다. 그런데 박철우 감독대행 체제 이후 우리카드는 '완전히 다른 팀'이 됐다. 박철우 대행 체제에서 무려 정규리그 14승 4패, 77.8%에 달하는 승률을 자랑했다.
특히 정규리그 마지막 6라운드에선 대한항공과 현대캐피탈, KB손해보험 등 1~3위 팀을 모두 꺾었다. 최태웅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포스트시즌 미디어데이 당시 우리카드의 봄배구 진출을 "박철우 매직이 만든 기적"이라고 표현했고, 현대캐피탈과 우리카드의 PO 맞대결 가능성 전망에 대해서도 "박철우 감독대행 체제 이후에는 50대50으로 본다"고 예상하기도 했다.
비록 완벽한 해피엔딩까진 아니었으나, 시즌 도중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PO 무대까지 누볐으니 역스윕 2연패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올 시즌 여정 그 자체를 향한 박수가 쏟아질 만했다. 나아가 팬들의 박수 안에는 오롯이 '박철우 감독 체제'로 치를 가능성이 높아진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감 역시 섞여있다.
한 시즌 여정을 마친 박철우 감독대행은 "PO 1, 2차전 패배는 전적으로 제 책임이다. 더 중심을 잡아주고 선수들이 좋은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방향성을 만들었어야 했다"며 아쉬운 결과를 감독대행인 자신의 책임으로만 돌렸다. 그러면서도 "선수들은 지금까지 잘 싸워줬고, 너무 잘해줬다. 좋은 선수들과 시즌을 보낸 것에 감사하다. 끝까지 무너지지 않으려는 모습들을 보면서 '좋아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다음 일(감독 승격)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하지 않고 있다. 그저 (기자회견을 마치고) 빨리 미팅룸에 가서 선수들에게 '정말 자랑스럽다, 좋은 선수들과 함께 해서 기뻤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결과는 아쉽지만, 과정은 너무 행복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