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뭐하고 있냐?"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완벽투를 펼쳤다. 승리 투수 요건까지는 아웃카운트 3개. 눈앞의 목표가 가까이왔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돌연 제구가 흔들렸고 연속 볼넷을 내줬다. 경헌호(49) 투수 총괄코치가 마운드에 올라 일침을 가했고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실점 없이 이닝을 마칠 수 있었다.
최민준(27·SSG 랜더스)은 2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키움 히어로즈와 2026 신한 SOL KBO리그 홈경기에 선발 등판해 5이닝 동안 81구를 뿌려 1피안타 3사사구 5탈삼진 무실점 호투로 시즌 첫 승을 따냈다.
2021년 10월 5일 잠실 LG 트윈스전(7이닝 무실점) 이후 무려 4년 6개월 가량, 정확히는 1640일 만의 선발승이었다.
2018년 SK 와이번스(SSG 전신)의 2차 2라운드로 지명된 최민준은 국군체육부대(상무)에서 병역 의무를 마친 뒤 본격적으로 기회를 얻기 시작했다. 2021년 선발과 불펜을 오갔고 준수한 활약을 펼쳤으나 이후엔 거의 불펜에서만 기회를 잡았다.
올 시즌에도 미치 화이트와 앤서니 베니지아노, 김건우와 타케타 쇼타, 김광현, 김민준까지 쟁쟁한 선발 후보들이 있었으나 통산 180승을 거둔 김광현과 1라운드 신인 김민준이 시즌을 앞두고 이탈했고 최민준이 대체자로 발탁됐다.

큰 기대를 걸기는 어려웠다. 시범경기에서도 2경기엔 불펜에서 나섰고 지난달 23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선발 기회를 얻었으나 2⅔이닝 3실점(2자책)으로 흔들렸기 때문이다. 경기 전 이 감독은 "던지는 걸 봐서 더 빠르게 움직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뚜껑을 열었더니 정작 그럴 이유를 찾지 못했다. 전혀 흔들림이 없었기 때문이다. 1회초 선두 타자 트렌턴 브룩스를 볼넷으로 내보내며 불안하게 시작했지만 이후 세 타자를 깔끔히 범타처리해 이닝을 마쳤다.
1회말 최정이 투런 홈런으로 선물을 안겨줬고 2회와 3회를 큰 위기 없이 마쳤다. 4회가 압권이었다. 키움에서 타격감이 뜨거운 중심 타선 안치홍, 최주환, 김건희 트리오를 KKK로 돌려세웠다. 좌우 타자를 가리지 않고 낙차 큰 커브를 결정구로 활용했고 제대로 적중했다.
5회가 위기였다. 돌연 제구가 흔들렸고 박찬혁을 상대로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줬다. 포수가 마운드를 찾아 최민준을 독려했지만 어준서를 상대로도 좀처럼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해 다시 볼넷을 허용했다. 무사 1,2루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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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헌호 코치가 직접 마운드에 올랐다.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과감한 직구로 박한결을 중견수 뜬공으로 돌려세운 최민준은 최재영과도 과감한 승부를 펼쳤고 결국 7구 승부 끝에 몸쪽 투심 패스트볼로 투수 앞에 떨어지는 병살타를 유도해 이닝을 마쳤다.
최민준이 5-0으로 앞선 상황에서 승리 요건을 안고 내려간 뒤에도 타선이 5점을 더 추가했고 불펜이 안정적으로 리드를 지켜내며 1640일을 기다린 선발승을 수확하게 됐다.
속구 최고 구속은 시속 144㎞였고 포심(32구)과 투심(14구)을 중심으로 커브(16구)와 커터(9구), 슬라이더(8구), 포크볼(2구)까지 다양한 구종을 구사하며 성공적인 시즌 시작을 알렸다.

경기 후 이숭용 감독은 "선발 민준이가 팀이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5이닝 무실점으로 완벽한 발판을 마련했다"고 칭찬했다.
최민준은 "오랜만에 선발승을 따내서 너무 기쁘다. 오늘 가족들이 와서 경기를 지켜봤다. 내가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가족들이 온 것이다. 힘이 났고, 가족들 덕분에 승리 투수가 된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최대 위기 상황이었던 5회 무사 1,2루를 넘길 수 있던 건 경헌호 코치의 한 마디 덕분이었다. 당시를 돌아본 최민준은 "내 뜻대로 투구가 안됐다. 투구수가 많아지면서 위기에 몰렸다"면서 "경헌호 코치님이 올라오셔서 '뭐하고 있냐'고 하셨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흐름을 내주지 않아 다행"이라고 전했다.
이날 가장 인상적인 무기는 커브였다. 다른 구종들도 빠르게 습득했다. 최민준은 "커브는 송신영 코치님이 노하우를 전수해주셨다"며 "타케다 선수에게는 슬라이더를 배웠다. 경헌호 코치님은 투심을 알려주셨다. 오늘 피칭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선발로 시즌을 시작한 건 처음이지만 첫 경기부터 승리를 따냈다. 로테이션의 선수 중 가장 안정적인 투구로 팀에 승리를 안겼다. 예감이 좋다. 최민준은 "선발 투수로 승리를 따내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앞으로 계속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오늘 경기에 만족하지 않고 올해는 10승을 꼭 달성하고 싶다"는 포부도 나타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