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웃음거리는 되지 말자" 공공의 적 됐던 대한항공, '독기'로 일궈낸 우승 [인천 현장]

"절대 웃음거리는 되지 말자" 공공의 적 됐던 대한항공, '독기'로 일궈낸 우승 [인천 현장]

인천=김명석 기자
2026.04.11 06:30
남자 프로배구 대한항공은 챔피언 결정전 2차전 판정 논란 이후 공공의 적이 된 듯한 분위기 속에서 힘든 경기를 치렀다. 현대캐피탈 필립 블랑 감독의 발언으로 논란이 커졌고, 대한항공 선수들은 동요했지만 '웃음거리가 되지 말자'는 각오로 경기에 임했다. 결국 대한항공은 5차전에서 현대캐피탈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컵대회와 정규리그에 이어 트레블을 달성했다.
정지석과 대한항공 선수들이 10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진에어  2025-2026 V리그 챔피언결정전 대한항공과 현대캐피탈 5차전에서 승리하며 우승한 후 환호하고 있다. /사진=강영조 선임기자
정지석과 대한항공 선수들이 10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진에어 2025-2026 V리그 챔피언결정전 대한항공과 현대캐피탈 5차전에서 승리하며 우승한 후 환호하고 있다. /사진=강영조 선임기자
조원태 대한항공 구단주이자 KOVO 총재와 대한항공 선수들이 10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진에어  2025-2026 V리그 챔피언결정전 대한항공과 현대캐피탈 5차전에서 승리하며 우승한 후 트로피세리머니를 펼치며 자축하고 있다.  /사진=강영조 선임기자
조원태 대한항공 구단주이자 KOVO 총재와 대한항공 선수들이 10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진에어 2025-2026 V리그 챔피언결정전 대한항공과 현대캐피탈 5차전에서 승리하며 우승한 후 트로피세리머니를 펼치며 자축하고 있다. /사진=강영조 선임기자

"선수들이 동요한 건 사실이죠. 그래도 절대 웃음거리는 되지 말자고 했습니다."

남자 프로배구 대한항공 베테랑 세터 한선수(41)가 최근 답답했던 심경을 털어놨다. 10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진에어 2025-2026 프로배구 V-리그 남자부 프로배구 챔피언 결정전(챔프전·5전 3승제) 5차전에서 현대캐피탈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뒤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다. 한선수는 "우리가 잘하고 왜 웃음거리가 되어야 하는지를 몰랐다. 그래서 힘들다고 생각하지 말고, 끝까지 가자고 했다"고 말했다.

'웃음거리'라는 표현이 나온 배경에는 지난 2차전에서 나온 판정 논란 이후, 대한항공이 사실상 공공의 적이 된 듯한 분위기와 맞물려 있었다. 당시 대한항공은 5세트 13-14로 뒤지던 상황에서 상대 레오의 서브가 라인에 걸친 듯 보이면서 패배 위기에 내몰렸으나, 비디오 판독을 거쳐 '아웃' 판정이 나오면서 듀스로 접어든 뒤 가까스로 역전승을 거뒀다. 다만 당시 판정을 두고 논란이 컸다. 정심·오심 여부는 물론이고, 앞서 비슷한 위치에 떨어진 장면이 인으로 판정된 것을 두고 판정의 일관성 문제로도 이어졌다.

특히 필립 블랑(프랑스) 현대캐피탈 감독이 "(한국배구연맹) 총재와 심판 모두가 대한항공의 굴레 안에 있다"고 작심 발언을 하면서 논란은 일파만파 커졌다. 조원태 한국배구연맹 총재가 대한항공 배구단의 구단주라는 점을 대놓고 꼬집은 것이다. 공교롭게도 석연찮은 판정 논란 속 패배를 떠안았던 현대캐피탈은 홈에서 열린 3차전과 4차전을 모두 셧아웃 완승으로 따내며 분위기를 바꿨다. 어느샌가 현대캐피탈은 오심으로 승리를 놓치고도 최초의 '리버스 스윕' 우승에 도전하는 팀이 됐고, 대한항공은 공공의 적이 된 듯한 분위기가 형성됐다.

지난 4일 대한항공과 현대캐피탈의 챔피언결정전 2차전 5세트 14-13 레오 선수 서브 볼 최대 접지면 중계화면 캡처본(위)과 13-12 상황 마쏘 선수 블로킹 볼 최대 접지면 중계화면 캡처본. 레오의 서브는 아웃, 마쏘의 블로킹은 인 판정이 각각 나왔다./사진=한국배구연맹 제공
지난 4일 대한항공과 현대캐피탈의 챔피언결정전 2차전 5세트 14-13 레오 선수 서브 볼 최대 접지면 중계화면 캡처본(위)과 13-12 상황 마쏘 선수 블로킹 볼 최대 접지면 중계화면 캡처본. 레오의 서브는 아웃, 마쏘의 블로킹은 인 판정이 각각 나왔다./사진=한국배구연맹 제공

헤난 달 조토(브라질) 대한항공 감독은 "단 한순간도 외부 요인에 흔들린 적이 없다"고 했지만, 선수들이 느끼는 감정은 달랐다. 한선수는 "(판정 논란 이후) 선수들이 동요한 건 사실"이라고 했고, 주장 정지석 또한 "장외 신경전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힘들었다.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이라 더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다만 대한항공 선수들 입장에선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판정은 오롯이 심판들의 몫이었던 데다 이튿날 사후판독 및 소청심사위원회에서도 '정독' 결론까지 나왔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 속 만약 우승에 실패하면, 분위기 상 대한항공은 조롱의 대상이 될 수도 있었다. 한선수가 "잘하고도 왜 웃음거리가 되어야 하는지 몰랐다. 절대 웃음거리는 되지 말자고 선수들에게 이야기했다"고 언급한 이유였다.

현대캐피탈이 석연찮은 판정으로 인한 분노를 코트 위에서 녹여내 3~4차전을 따냈다면, 대한항공은 그야말로 '독기'를 품은 채 마지막 홈 5차전에 나섰다. 정지석도 "악으로, 깡으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다행히 앞선 경기들과 달리 5차전에서는 많은 홈팬의 응원을 등에 업고 경기에 나설 수 있었다. 팬들 역시도 '고개 들어 정심이야' 등 응원 문구를 통해 판정 이슈로 흔들린 선수들에게 힘을 불어넣었다.

대한항공 정지석이 10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진에어  2025-2026 V리그 챔피언결정전 대한항공과 현대캐피탈 5차전  에서 블로킹 터치아웃을 시도하고 있다. /사진=강영조 선임기자
대한항공 정지석이 10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진에어 2025-2026 V리그 챔피언결정전 대한항공과 현대캐피탈 5차전 에서 블로킹 터치아웃을 시도하고 있다. /사진=강영조 선임기자

안방으로 돌아온 대한항공의 저력은 정규리그 1위팀다웠다. 2경기 연속 0-3 셧아웃 패배를 당했던 지난 3~4차전과 달리 대한항공은 1세트부터 25-18로 여유 있게 따냈고, 2세트도 25-21로 잡아내며 우승에 단 한 세트만을 남겨뒀다. 비록 3세트를 내주며 잠시 흔들렸지만, 역전에 역전을 거듭한 4세트를 25-23으로 따낸 뒤 기어코 '우승 축포'를 터뜨렸다.

한선수는 "기필코 이긴다는 생각뿐이었다. 웃음거리가 되지 않으려고 더 소리를 지르고 분위기를 끌어올리려 노력했다"고 했다. 정지석은 "역대급 챔프전이었다"면서 "사실 3·4차전 패배로 불안한 건 있었다. 그래도 제 연봉이 꽤 되지 않나(웃음). 제가 책임을 져야지 피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끝까지 밀어붙인 덕분에 이길 수 있었다"며 험난했던 챔프전 끝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번 챔프전 우승으로 대한항공은 앞서 컵대회와 정규리그에 이어 '트레블(3관왕)'을 달성했다. 대한항공의 챔프전 우승은 지난 2023-2024시즌 이후 두 시즌 만이자 역대 여섯 번째다. 이번 우승으로 대한항공은 삼성화재(8회)에 이어 챔프전 최다 우승 단독 2위로도 올라섰다. 헤난 감독은 "챔프전 최우수선수(MVP)를 고르라고 하면 못 고르겠다. 모두가 MVP이기 때문"이라며 "상대도 환상적인 팀이지만, 대한항공이 더 우승 자격이 있었다"고 했다.

정지석과 대한항공 선수들이 10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진에어  2025-2026 V리그 챔피언결정전 대한항공과 현대캐피탈 5차전에서 승리하며 우승한 후 환호하고 있다.  /사진=강영조 선임기자
정지석과 대한항공 선수들이 10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진에어 2025-2026 V리그 챔피언결정전 대한항공과 현대캐피탈 5차전에서 승리하며 우승한 후 환호하고 있다. /사진=강영조 선임기자
조원태 대한항공 구단주이자 KOVO 총재와 대한항공 선수들이 10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진에어  2025-2026 V리그 챔피언결정전 대한항공과 현대캐피탈 5차전에서 승리하며 우승한 후 트로피세리머니를 펼치며 자축하고 있다.  /사진=강영조 선임기자
조원태 대한항공 구단주이자 KOVO 총재와 대한항공 선수들이 10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진에어 2025-2026 V리그 챔피언결정전 대한항공과 현대캐피탈 5차전에서 승리하며 우승한 후 트로피세리머니를 펼치며 자축하고 있다. /사진=강영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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