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올림픽 영웅' 원윤종(41)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과 최인정(36) 2024 파리올림픽 여자 펜싱 단체전 은메달리스트가 마이크를 잡자 강당에 모인 꿈나무들의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대한체육회(회장 유승민) 선수진로지원센터가 개최하는 학생 선수 진로 설계 지원을 위한 2026년 찾아가는 진로 토크콘서트가 지난 10일 경남 진주시에 위치한 경남체육고등학교 강당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훈련에 매진한 채 국가대표의 꿈을 키워가는 경남체고 학생들 앞에 특별한 2명이 섰다. 전 봅슬레이 국가대표이자 IOC 선수위원으로 활약 중인 원윤종, 그리고 2012 런던 올림픽부터 2024 파리 올림픽까지 4회 연속 올림픽 무대를 누빈 펜싱 국가대표 최인정이었다.
이들 멘토가 꿈나무 후배들을 위해 경남체고를 찾은 이유. "운동선수는 미래가 보장되나요?" "운동 그만두면 저는 뭘 해야 하나요?" "지금 자격증을 따도 늦지 않을까요?"라는 체고생들의 지극히 현실적인 질문과 고민을 듣고 조언을 해주기 위해서였다.
이날 가장 먼저 나온 질문은 '국가대표가 되려면 얼마나 큰 노력을 해야 하는가'였다. 그러자 원 위원은 곧바로 학생들의 현재 훈련 스케줄을 물었다. 학생들은 새벽과 오전, 오후에 이어 저녁에도 보강 훈련을 한다고 했다. 그러자 원 위원은 "현재 여러분이 소화하고 있는 훈련만으로도 양만 놓고 보면 국가대표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훌륭한 수준"이라고 격려했다.
그러면서 원 위원은 "양은 충분하지만, 질적인 부분에서 차이를 만들어야 한다. 훈련일지를 그냥 적으라고 하니까 적는 식이면 곤란하다. 오늘 내 컨디션은 어땠는지, 날씨나 기분, 세부적인 동작의 느낌은 어땠는지 등 상세하게 기록해야 한다. 이렇게 정성을 들여야 본인이 생각하는 훈련 환경, 컨디션 등이 세밀하게 보일 것이다. 충분한 고민을 하면서 최선의 기량을 낼 수 있다. 그것이 당장 효과는 안 나타날지라도 1년, 2년 뒤에는 분명히 차이를 만들어낼 것"이라 힘주어 말했다.
최인정 역시 이에 적극 공감했다. 최인정은 중·고교 시절 엄청난 훈련량을 소화하며 집에도 가지 못한 채 3개월씩 합숙하며 훈련했던 경험을 떠올렸다. 그는 "그런 시간과 노력이 있었기에 국가대표가 됐다고 생각한다. 지금 여러분들의 훈련량은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 국가대표가 되고 싶은 마음을 끝까지, 될 때까지 계속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다면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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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토크콘서트의 하이라이트는 진로와 미래에 대한 문답 시간이었다. 한 학생은 '운동선수의 미래가 보장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원 위원은 "사실 운동선수뿐만 아니라 일반 학생도, 사회인도 미래가 보장된 사람이 있나요"라고 되물은 뒤 "아무도 없죠"라고 웃으며 잘라 말했다. 순간, 장내가 조용해졌다. 원 위원은 "그렇지만 여러분이 흘리는 땀방울은 절대 무의미하지 않다. 비록 원하는 목표를 이루지 못할지라도, 그 과정에서 얻은 인내심과 도전 정신은 사회에 나갔을 때 다른 이들보다 훨씬 높은 역량을 발휘하게 만드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원 위원이 특별히 꺼낸 화두는 미디어의 발전 및 스포츠 저변 확대로 인한 스포츠 관련 산업의 다양성이었다. 원 위원은 "보장된 미래는 없지만, 지금 여러분들은 한 걸음씩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과정 자체가 결코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비록 목표를 성취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한층 성인으로 성장시켜줄 것이다. 또 최근에는 미디어가 워낙 발달해 있다. 육상, 역도 등 대중을 상대로 많이 노출돼 있다. 생활체육 저변도 확대됐다. 인공지능(AI), 영어 등도 흥미를 갖고 꾸준히 들여다보면 꼭 운동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성장하고 성공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다. 지금 하는 이 운동이 여러분들한테는 미래에 있어서 강점이자 무기다. 운동을 그만둬도 할 게 많다는 점을 꼭 말씀드리고 싶다"며 현실적인 조언을 건넸다.
최인정 역시 "저도 운동을 그만두면 무엇을 할지 매일 고민한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라고 해서 미래가 완성된 건 아니다. 정답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해보지 않은 일에도 용기 내어 도전해 보는 것"이라면서 "이렇게 후배들 앞에서 멘토링을 하는 것 또한 저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자 진로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또 대한체육회 선수진로지원센터를 찾아 전문가와 상당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전했다.
두 영웅은 자신들의 인생을 바꾼 결정적인 '선택' 및 '슬럼프 극복법'도 후배들과 공유했다. 26세라는 늦은 나이에 체육 전공 대학생 신분으로 봅슬레이에 입문, 올림픽 메달리스트에 이어 IOC 위원까지 오른 원 위원은 "어떤 도전이든 결코 늦은 때란 없다. 10대인 여러분은 앞으로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는 엄청난 시간이 있다. 스스로 한계를 두지 말라"고 강조했다. 자신의 경기 전 루틴도 공개했다. 원 위원은 "경기 전에는 훈련하면서 잘 되지 않았던 부정적인 기억은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린다. 연습 때 가장 좋았던 기억만 떠올리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최소 10번은 했다"고 소개했다.

이날 약 50분간의 강연이 끝난 뒤 퇴장하는 학생들의 손에는 대한체육회가 선물한 기념품(팀코리아 에코백)이 들려 있었다. 그렇지만 학생들은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천금 같은 조언을 직접 두 올림픽 영웅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육상을 전공하는 김동건(2학년) 학생은 "수업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런 강연이 있다는 것을 듣고 설렜다. 질문하기 전부터 너무 긴장돼 다리가 떨릴 정도였는데, 선배님들의 답변을 들으며 혼자 하던 막연한 불안감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밝게 웃었다. 사격 전공의 남예율(3학년) 학생은 "사실 최근에 운동을 그만둘까 고민하는 찰나에, 선배님들이 '운동했던 경험은 사라지지 않고 삶의 큰 자산이 된다'고 말씀해 주신 게 제일 와닿았다. 이렇게 올림픽 메달리스트 같은 대단한 분들도 진로를 고민하는데, 이제 고등학생인 제가 진로에 관해 고민하는 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대한체육회는 학생 선수들이 운동선수로서의 성장뿐만 아니라 은퇴 이후의 삶까지 주도적으로 설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올해부터 고등학교를 직접 찾는 진로 토크콘서트를 개최하고 있다. 국가대표 출신 선배 선수들의 경험과 다양한 경력개발 사례를 공유하며 학생 선수들의 진로 탐색을 돕고 있다. 이날 강연이 끝난 뒤에는 대한체육회 관계자가 직접 대한체육회 입사를 궁금해하는 학생에게 채용 과정 등을 상세히 설명하는 등 실질적인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김희영 대한체육회 선수지도자지원부 대리는 "학생 때 가장 필요한 건 나 자신에 관한 탐색"이라면서 "꼭 운동뿐만 아니라,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또 어떤 부분에 장점이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봤으면 한다. 물론 경기와 훈련 등으로 바쁠 수 있지만, 책 등을 활용한 간접 경험을 통해 본인을 잘 아는 것도 중요하다. 어릴 적부터 자신의 장단점과 좋아하는 점 등을 명확히 파악해야 나중에 은퇴 후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강연을 마친 뒤 만난 원 위원은 "학생 선수들의 종목이 정말 다양한데, 그래도 공통적인 진로에 관해 어떤 내용을 조언할 수 있을까에 대해 집중했다. 또 진로뿐만 아니라, 경기력이나 정신력 관리 등에 대해서도 굉장히 관심이 큰 것 같다. 그런 부분을 토대로 선수가 성장하고 발전하면서, 최종적으로 커리어 전환을 어떻게 본인이 잘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면서 "예전에는 운동 선수들도 은퇴 후 먹고 사는 것에 관한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AI와 영어, 자격증 등 여러 분야와 잘 접목하면 훨씬 더 가능성이 큰 직종이 아닐까 생각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