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머슴에 `팽`당한 주인

[기자수첩]머슴에 `팽`당한 주인

노명우 기자
2002.04.16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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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머슴에 `팽`당한 주인

주인이 머슴에게 `팽' 당했다. 휴렛팩커드(HP) 공동 창업자의 아들로서 18% 지분을 소유한 대주주 월터 휴렛이 전문경영인인 여성 최고경영자(CEO) 칼리 피오리나에 의해 회사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컴팩과의 합병을 반대해온 휴렛은 찬반투표 과정에서 HP가 기관투자가인 도이체 은행 관계자들을 매수, 찬성표를 던지게 했다며 찬반투표 무효소송을 제기한 데 대한 괴씸죄로 이사직을 박탈 당했다는 후문이다.

휴렛의 실직(?)을 통해 우리는 미국 자본주의의 뿌리가 `핏줄 보다 능력'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창업자 가족이 오너가 돼서 기업을 좌지우지하는 일이 매우 드문 편이다. 잭 웰치, 아이아코카, 아이스너 등 쟁쟁한 미국의 CEO들은 모두 전문경영인이다. 자본주의가 합리적 사고와 경쟁이라는 두축에 의해 움직인다면 미국의 기업지배구조가 전형적인 예에 속한다. 미국 역시 처음부터 이러한 틀을 지니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권력과 돈에 관해 독특한 이론을 제시한 니알 퍼거슨은 명저 `현금의 지배(THE CASH NEXUS)' 서문에서 20세기 후반 이후 미국 자본주의를 일컬어 `전문경영인 자본주의'라고 정의했을 정도다. 합병주총을 통해 밀려날뻔 했던 피오리나의 역쿠데타는 아직도 `제왕적 대통령과 황제적 오너회장' 체제라는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와 대비된다.

이제 피오리나와 같은 전문경영인이 기업경영의 핵심을 장악하는 사례가 한국에서도 먼 미래의 얘기가 아니길 바란다. 그러한 사례가 나오는 걸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소유권과 경영권의 갈등에서 항상 소유권이 우위에 있다는 도식은 더이상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서는 곤란하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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