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이카루스의 밀랍날개

[CEO 칼럼]이카루스의 밀랍날개

김덕현 뱅크오브아메리카 서울대표
2003.12.18 20:09

[CEO 칼럼]이카루스의 밀랍날개

금융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올해는 대형 은행들이 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적자를 예상하고, 나머지 은행들도 대부분 순익이 작년보다 훨씬 못하다고 한다. 또 LG카드를 비롯한 카드사들과 증권사의 구조조정 문제 등 금융시장의 어두움이 세모를 억누르고 있다.

 

일파만파라고나 할까. 우리나라는 한 곳에서 문제가 야기되면 그 파장이 사정없이 도처로 확산돼 파급효과를 몰고 온다. 적당한 곳에 이를 차단할 방호벽이 없다 보니 당연한 일이다. 사방을 둘러봐도 종합적인 장기비전 보다는 단기 실적에 치중한 단기업적주의가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이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기업경영에 이 보다 중요할 수 없는 유연성(flexibility)이 결여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국내은행들의 전략을 한번 보자. 1997년 이후의 혹독한 위기를 극복하고 거의 모든 은행들이 기업금융을 버리고 오로지 소비자금융과 주택금융 등 소매금융에만 전념해 왔다. 그 치열한 경쟁의 결과 처음 몇년간은 그런 대로 수익을 올릴 수 있었지만 급격한 자산의 질 저하와 손익구조의 악화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 불경기에 따른 소비자금융과 신용카드 부문의 부실화가 엄청난 충당금 적립을 초래할 수 밖에 없었으며 정부의 부동산 투기억제 정책에 따른 가격하락으로 주택금융 또한 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어제의 캐시카우가 오늘의 문제아가 되고만 것이다.

 

1995년부터 국내은행에서 IR 업무를 맡아왔던 필자는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는 이야기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1999년 이후 신용카드 업무가 활성화되고 2000년대에 들어와 카드사용 장려책이 정부에 의해 발표되면서 카드업무가 상당한 이익을 가져다 주었던때였다. 당시 뉴욕과 런던 그리고 홍콩과 싱가포르 등 여러 곳의 투자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지금 비록 카드업무가 수익을 내고 있지만 수년내 재앙이 돼 돌아올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던지곤 했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이미 경험을 통해 큰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으니 미리 대비하라는 경귀였던 것이다. 이는 국내에 즉각 전달되었음은 물론이다. 각 기관의 최고경영자와 담당자들이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대처했는지는 모르지만 얼마 안가서 이는 곧 현실로 다가와 지금 우리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면 생각나는 희랍신화가 있다. 이카루스의 밀납날개가 바로 그것이다. 희랍의 신 이카루스는 아버지 디에달루스가 만들어준 밀납날개를 달고 그렇게 소원했던 하늘로의 비상을 시작했다. 이카루스는 내친 김에 한없이 날아 태양에 너무 가까운 곳까지 다가갔기 때문에 날개가 녹아버려 결국 에게해로 추락하고 만다. 이카루스는 밀납날개 덕분에 높이 날아 오르는 데는 성공했지만 바로 그 날개 때문에 바다에 떨어지고 만 것이다. 이 신화는 욕망과 환경에의 적응 문제에 대해 많은 점을 우리에게 시사해주고 있다. 날개가 녹는 줄도 모르고 날기로 일관한 이카루스의 무모한 고집이 어려움에 봉착한 우리 기업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안따까울 따름이다.

 

사람이 잘 나가면 거만해지고 기업도 잘 나가면 교만해지기 마련이다. 기업이나 개인이 잘 나갈 때야말로 주위 환경을 돌아보아야 한다. 한번 수립한 전략이 금과옥조일 수는 없다. 주변의 변화에 따라 융통성있게 전략과 방향이 수정돼야 생존할 수 있음을 이 신화는 말해준다. 이런 점에서 현재 어려움에 처한 우리나라의 은행들은 전략을 재점검해 봐야 된다. 우후죽순처럼 부풀려온 소매금융 일변도의 영업전략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다 줄지 이제는 심각하게 고민하고 다시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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