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투초대석]오종남 통계청장은 누구
오종남 통계청장은 한국 경제 관료중 대표적인 '기획통'이자 '국제통'으로 평가된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탁월한 말주변, 그리고 최상급 수준의 영어, 일어 실력을 부인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다.
오 청장은 서울법대를 졸업한 뒤 행정고시 17회로 내무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지만 1977년부터 경제기획원 등에서 기획, 분석, 예산 업무를 주로 담당했다.
1989년 동향분석과장때는 관료로선 이례적으로 '한국경제위기론'을 설파, 토지공개념 도입 등 개혁조치없이는 한국경제의 지속 성장이 어렵다는 점을 주장하기도 했다. 당시 부동산가격 급등 및 소득분배구조 악화에 대한 대응책으로 도입된 토지공개념 제도는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 처분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
경제기획, 분석업무만 맡던 오 청장은 1997년 당시 재정경제원 대외경제총괄과장으로 국내 및 대외 양쪽의 경제정책 조정을 맡으며 국제경제쪽으로 시각을 넓혔다. "바랐던 자리가 아니어서 처음엔 서운했지만 결국은 기회였다. 전화위복이 돼 국제적 시야를 갖게 됐다"는 게 오 청장의 회고.
보통 이상이었던 영어와 일어실력도 한단계 업그레이드됐다. 외환위기때 한·일재무장관회담의 일어통역,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울픈슨 세계은행 총재 등의 영어통역은 그의 몫이됐고 경험은 고스란히 자산으로 남았다.
오 청장의 이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대통령 비서실 근무. 그는 정책비서관, 건설교통비서관, 산업통신과학비서관, 재정경제비서관 등 4개 비서관을 거친 유일무이한 인물이다. 과천관가의 시기와 질투도 적지 않았지만 정부는 그의 능력을 필요로 했다.
국민의 정부 출범 초 정책비서관으로 대통령 비서실 직제개편을 완성했고 산업통신과학비서관으로 빅딜 등 재벌개혁과 같은 기업구조개혁을 주도했다. IMF 대리이사를 마친 후 다시 청와대재경비서관으로 다시 돌아와 대우차 매각, 현대건설 및 쌍용양회 구조조정 등 현안을 담당하는 한편 정권후반기 구조개혁시스템 정착의 방향을 잡았다.
△전북 고창(51세) △광주고, 서울법대 △미국 서던 메소디스트대 대학원, 경제학박사 △행정고시 17회 △경제기획원 동향분석과장·예산관리과장 △재정경제원 국제경제과장·대외경제총괄과장 △대통령 정책비서관·건설교통비서관·산업통신과학비서관 △국제통화기금(IMF) 대리이사 △대통령 재정경제비서관 △통계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