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기름값과 감나무
정부가 세금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다시 빼들었다. 지난해 말 부동산시장에서 나름대로 재미를 보더니 이번에는 원유를 도마에 올렸다. 산업자원부와 재정경제부는 지난달 관세와 석유수입부과금을 낮춘데 이어 주행세와 교통세 등 내국세 인하를 검토하고 있다.
과천에서 정부가 시기와 방법을 두고 골머리를 앓는 사이 또 다른 곳에서는 관(官)의 해묵은 단견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넘쳐난다. 10일 국제유가 전문가 협의회에서 참석자들은 물가불안은 이해하지만 세금 인하로는 더 이상 안된다고 입을 모았다.
한 참석자는 "세금인하가 설탕으로 덧칠해진 사탕처럼 당장 먹기는 좋겠지만 부작용이 크다"며 "올라간 기름값을 감내할 능력이 있는 이들에게까지 혜택을 줘 소비를 조장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명품을 사러 백화점에 가면서 세단을 몰고 가는 이들과 한푼이 아쉬워 졸음을 쫓아가며 승객을 찾는 택시기사에게 같은 혜택을 줄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정부는 이번에 겪는 고유가사태가 중동의 정정 불안과 테러우려 때문에 비롯돼 통제 가능한 범위에 있지 않다고 말한다. 수급에 의한 불안이 아닌 만큼 섣부른 개입을 자제하는 대신 정밀한 비상대책(컨틴전시 플랜)을 마련해 놨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혜택을 선별적으로 주려면 막대한 행정비용이 든다는 말도 나온다.
감나무(원유가격) 밑에서 감(저유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누워 있는 사이 감은 더 높은 가지에 열리고 있는 격이다. 전정가위로 가지를 쳐 줬다면 따먹기 좋은 곳에 열렸을 것이다. 지금 높은 곳의 감을 따려고 막대기로 가지를 쳤다가는 감은 안 떨어지고 가지만 부러뜨리기 쉽다.
이날 회의가 끝난 뒤 몇몇 참석자는 엘리베이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왜 이런 회의를 하는지 모르겠다. 보여주기 위한 회의를 준비하는데 들어가는 노력을 고유가 대비에 쏟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