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클릭]아슬아슬한 줄타기
사회적 이슈가 된 신용불량자 문제를 취재할 때마다 저는 항상 난감한 상황에 직면합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입니다.
몇일전 일부 은행이 연체기간 3개월 미만인 고객들에 대해 채무조정을 실시할 방침이라는 기사가 보도됐습니다. 아직 신용불량자가 아닌 채무자들의 빚도 조정하겠다는 것은 기자들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지금까지 잇따라 나온 개인워크아웃, 배드뱅크, 개인회생제도 등이 모두 이미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한 채무조정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기자는 다른 은행들도 유사한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는지 혹은 준비하고 있는지 취재했습니다. 몇몇 은행은 있다고 알려줬지만 대부분 은행들은 없다거나 준비하는게 있지만 알려주기 곤란하다는 반응이었습니다. 대대적으로 신불자 구하기에 나서고 있는 정부가 알면 '이뻐해줄' 내용인데 왜 은행은 알려주기 곤란하다고 했을까요?
모럴해저드, 즉 도덕적 해이 때문입니다. 빚 갚는 기간과 이자를 조정해 주겠다는 소식을 접하면 채무자들이 돈을 안갚을려는 생각부터 하는건 어쩌면 인지상정 아니겠습니까.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렇게 말을 하더군요. "연체기간이 3개월이 안된 고객들은 각 지점에서 중점적으로 관리하는 대상이다. 이들은 지금 갚지 않으면 신용불량자가 된다는 걱정을 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만 노력하면 대출해준 돈의 약 70% 정도는 회수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기사가 나가면 당장 지점에서 항의전화 빗발친다"고 말입니다. '지점에 연체회수하라고 닥달을 하면서 본점에서는 이런 기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면 도대체 연체 회수를 하라는거냐 말라는 거냐'는 얘기입니다.
한 은행에만 신용불량자로 등록된 고객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실시한다는 보도가 나갔던 얼마전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은행의 가계금융 담당 부행장은 기자와 만나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은행에서 신용불량자 구제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간 날 저녁 퇴근했다가 아내로부터 호되게 혼났다는 겁니다. 아내의 말인즉슨 "그렇게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면 나 같아도 빚 안갚겠다. 왜 그런 식으로 일을 하느냐"는 것이었답니다.
이 때문에 은행 관계자들은 기자에게 되도록 이런 기사는 보도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합니다. 이런 채무조정 프로그램은 되도록 외부에 소리나지 않게 조용히 진행해야 한다는 겁니다. 게다가 기사로 보도되지 않아도 은행이 알아서 해당되는 고객에게 알리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기자 입장에서는 고객들과 관계된 중요한 사안인데다 최근 사회적 이슈이기에 뉴스로서의 가치도 높은 문제를 그냥 모른척 넘어갈 수도 없으니 참 난감합니다.
신용불량자 구제와 모럴해저드 조장은 동전의 양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신불자가 적정 수준으로 줄어들지 않는 이상 기자는 이같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계속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