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벼락치기'에 대한 푸념
학창 시절 시험을 앞두고 '벼락치기'를 해 본 경험이 적잖다. 시험을 마친 후 후회하지만 막상 닥치면 '당일치기'나 '초치기'를 하곤 했다.
지난 7일 재정경제부 출입기자들은 팔자에 없는 '당일 초치기'를 경험했다. 자료가 쏟아지는 일이 종종 있긴 하지만 이번 것은 정도가 좀 심했다. 정부가 중소기업을 위한 '종합선물세트'를 내놓은 시각은 오전 11시.
29쪽짜리 요약본을 포함, 책자 4권에 분량은 총 181쪽에 달했다. 74쪽짜리 하반기 경제운용방향까지하면 소설책 한권 분량의 자료가 던져진 셈이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민생경제점검회의 시작 전에는 자료를 배포할 수 없다는 정부 방침탓에 기자들은 단 몇시간만에 책 한권을 정리하는 놀라운(?) 실력을 발휘해야 했다. 사전 브리핑도 없었다. "할 수 있으면 취재해서 써 봐라"(이헌재 경제부총리) 정도가 전부였을 뿐이다.
제대로 된 비판은커녕 '선물'을 받아야 하는 중소기업 관계자들조차 선물 '내용'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 정부 관계자도 "한번에 쏟아내니 정말 중요한 것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 것 같다"고 할 정도다.
'벼락치기'가 된 이유가 더 가관이다.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확정되기까지 보안이 중요하다는 게 정부측 설명이다. 이번 대책은 국민이나 중소기업을 위한 것이 아닌 대통령을 위한 정책이라는 얘기로 들린다. '정보 보안'은 대통령 보고 전에 새나가는 것을 막는 게 아니라 설익은 정책이 섣불리 공개되는 것을 막자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닐까.
예년에도 경제운용방향이나 종합대책같이 중요한 사안은 사전 브리핑을 통해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노력을 했다. 그래야 대국민 홍보가 충분히 이뤄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정부는 지난 5월17일, 6월30일 등 두차례에 걸쳐 대통령이 참석한 내부토론회를 거쳤고 9개 부처가 참여해 석달동안 마련한 종합대책이라고 자랑한다. 그러나 석달 동안 고민해 낸 문제를 세 시간만에 풀어내긴 쉽지 않다. 스스로의 능력 부족을 한탄하며 이렇게라도 정부를 향해 푸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