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투초대석]안홍철 전무는 누구인가
누구나 자유를 꿈꾸며 살아간다. 가급적 속박받지않는 인생, 자유로운 삶을 추구한다. 물론 꿈은 꿈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은 법. 한 직장을 선택하면 그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게 우리네 인생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적어도 안홍철 전무(54)는 예외의 범주에 속할 듯싶다. 안전무는 "내 인생의 목표는 자유인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 그의 이력을 들여다보면 '자유인'에 접근해 있는 그를 발견할 수 있다.

그가 BAT코리아의 기획홍보부 전무(Corporate Regulatory Affairs Director)로 부임한 것은 지난 7월. 안전무는 그 이전까지 20여년간 대기업, 재경부, 월드뱅크, IT분야 컨설팅 등 다양한 영역에서 경험을 쌓았다.
안전무는 대학 졸업 후 대신증권과 진해화학에서 출발했다. 그것도 잠시였다. 그는 행정고시(23회)에 합격하며 정통관료의 길로 방향을 전환했다. 그는 재정경제부에서 물러날때까지 23년간 한국경제의 성장을 이끌었다. 특히 세계은행 (World Bank)의 수석 이코노미스트(1992~1998)로서 IMF외환위기 당시엔 한국담당관으로 명성을 떨쳤다. 또 92년 당시 이미 인터넷을 접하며 '정보화시대'의 도래를 확신했다고 한다. 당시 그의 활약상은 '한국:기업 및 금융시장의 구조조정 계획'이라는 책으로도 발간됐고 인도네시아의 구조조정 계획을 원조하는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국제금융센터'에서는 임시 사장으로서 센터의 미션을 재정의하고 주요 비즈니스, 정부관계 및 세계 수준의 IT 부서를 이끄는 임무를 수행했다. BAT코리아에 합류하기 직전에는 미국진출을 원하는 한국 IT기업들을 대상으로 전략적 마케팅ㆍ사업개발컨설팅서비스를 제공하는 아이파크보스톤 (iParkBoston)의 사장 겸 CEO로 3년간 재직하기도 했다.
그는 "본디 자유분방한 성격이라 공직보다는 민간부문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실제로 대학 졸업후 대신증권, 진해화학 등 민간에서 근무하다 행정고시가 합격되는 통에 공직에 있게 됐다. 공무원으로서는 운이 좋아 약 10년가량 미국생활을 할 수 있어 공직을 계속했을 뿐 2001년 2월 공직을 사직하면서부터 제 자리로 돌아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안전무는 이 시대를 '지혜롭게 살아가는 법'에 대해 묻자 알듯 모를듯한 대답을 했다.
"남의 눈에 비친 내가 아니라 자기 눈으로 본 나로서 살아가면 불황이나 변화의 시대에도 어려움이 없겠지요. 인간으로서 자신의 모습은 그대로 간직되지않겠어요.다만 독단이 아니라 이타적 자신을 이뤄야겠지요."
그가 즐겨듣고 잘하는 노래는 '마이웨이(My Way)'다. 생활신조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자유롭게 소신껏 살자'라고 한다. 존경하는 인물은 세종대왕이고, 존경하는 CEO는 잭 웰치GE전회장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