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버블의 몰락
에스파냐는 지리상의 발견 이후에 황금시대를 맞는다. 최강의 아마다(Armada) 무적함대가 영국에 무너지기까지 16세기에는 감히 대적할 국가가 없었다.
왕조의 쇠퇴가 뚜렷해질 무렵, 일단의 에스파냐 경제학자들은 몰락의 징후를 예리하게 짚어낸다. 육체노동과 공예기술에 대한 경멸, 놀고먹는 성직자 수의 비대화, 삼림의 황폐화로 대표되는 인프라의 훼손, 화폐가치의 혼란과 강압적 징세. 대략 이런 것들이다.
부끄럽지 않게도 이들은 몇 가지 쓸만한 제안을 내놓는다. 기술교육의 장려, 장인의 대거 유입, 관계사업 확장과 국내 수로의 개선 등 인프라 보강, 그리고 화폐가치의 안정화라는 특단의 주문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처럼 훌륭한 제안이 철저히 무시된 적이 없을 것이다.
그 다음 흥망의 역사는 네덜란드가 이어받는다. 초기에는 종교적 간섭 없이 모든 마을에 학교가 하나씩 생겨나고, 화폐경제에 필수적인 산수교육이 널리 행해졌다. 절대 귀족층의 부재는 사람들로 하여금 공동으로 제방 쌓기에 몰두하게 하고, 인프라에 대한 지속적 관리를 필요하게 만들었다.
암스텔담은 왕성한 금융활동의 중심지로 올라섰다. 그러나 신용에 기초한 국채의 과다 발행과 판매는 금리생활자를 양산했고, 그 결과 모험적 해양사업은 서서히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몇 차례 공방 끝에 네덜란드의 헤게모니는 기술자들의 대거 이주를 받아들인 영국으로 넘어간다.
소비가 늘고 실물투자가 현저히 줄어든다. 화폐가 범람하며 금융부문은 이상적인 비대화로 흘러간다. 투자보다는 안정적인 배당을 선호하고, 길드나 토지 보유층 같은 렌트 지향형 조직들은 보수적·독점적 이익을 집요하게 추구한다. 기득권 계층의 강세 속에 빈부격차의 양극화는 심각해진다. 경제석학 찰스 킨들버거는 경제대국이 겪는 몰락의 징후를 이렇게 요약한다.
그 뿐이랴. 몰락의 끄트머리에 이르면 위축되는 실물부문과 괴리된 금융부문의 강세, 그리고 넘치는 유동성에 기초한 버블의 형성, 특히 제한된 부동산에 집중될 때 그 징후는 더욱 뚜렷하다는 사실.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 경제의 모습과 너무나 공통점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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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가치가 사용가치를 크게 웃돌 때 보통 버블이 있다고 정의한다. 물론 사용가치가 얼마인지는 각자 판단 상에 오류는 있다. 중요한 것은 용도가 아니라 단지 조만간 가격이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무더기 매입에 달려들 때 분명히 비이성적인 거품이 있다할 것이다.
평균가구의 소득에서 절반 가량이 주택과 교육 관련 비용에 들어가는 현실, 거의 모든 가구가 재산 증식수단은 부동산이라고 여기며 사실상의 부동산사업자로 나서는 현실, 소득의 나머지는 사업을 위한 금융비용 내지 운영비용으로 해석될 수 있는 현실들. 실물부문의 투자는 실종되고 자산부문의 투기만 남는다면 결과는 뻔하다.
출산율은 떨어지고 고령인구는 늘어난다. 실물투자는 위축되고 유동성은 넘쳐난다. 기업은 해외로 빠져나가고 가계는 돈 싸들고 부동산으로 달려간다. 당장에 버블이 꺼지지는 않더라도 그 연장선이라면 장기적인 몰락을 피할 수가 없다. 우리 경제의 각성은 어디부터 이루어져야 하는가.
또 한번 400년 전 에스파냐 경제학자들의 조언을 새겨들을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