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우리 경제가 직면한 가장 어려운 문제는 양극화이다. 그러나 양극화의 원인과 종류 및 해법에 관하여는 사람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른 것 같다.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에서 세금을 올려서 양극화 해소를 위한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하고, 야당인 한나라당은 조세를 감면하여 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세금을 올리겠다는 주장은 지금과 같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국민의 소득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잘못이 있고 세금을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과거의 경험을 상고하지 않는 잘못이 있다. 그리고 이들 두 주장은 모두 우리의 양극화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생각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현상을 그저 편리한 정책수단으로 해결해야겠다는 오판과 편의주의의 결과이다.
거시경제적으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세금을 올려 해결하겠다는 것은 가장 초보적인 발상이다. 이는 생산성이 높은 사람들에게서 세금을 더 걷어 생산성이 낮은 사람들을 보조하겠다는 것으로 그와 같은 정책이 장기적으로 시행된다면 성장잠재력을 잠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증세를 통해 양극화를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같이 못살자는 모택동식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세금을 낮춰 양극화를 해결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모든 경제문제를 해결하는데 등장하는 보수진영의 단골메뉴이다. 1980년대 초 미국의 40대 대통령 레이건은 극단적인 감세정책을 펼쳤지만 미국의 소득 양극화는 오히려 확대되고 소위 쌍둥이 적자라고 하는 재정적자와 무역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감세정책이 양극화를 해결한 전례가 없지만 생산성이 높은 사람들을 고무시키고 생산성이 낮은 사람들에게는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력을 경주하게 함으로써 성장잠재력을 증대시키는 효과는 있다.
현재 우리의 양극화는 외환위기에 의해 강제적으로 이루어진 극단적인 개방화와 구조조정의 결과 나타난 현상이다. 외환위기 이후 개방화와 구조조정을 가장 심하게 겪은 분야 가운데 하나가 금융부문이다. 은행들은 합병되고 많은 직원들은 해고됐다. 그리고 많은 금융기관이 파산했다. 그 결과 우리의 금융기관 특히 은행들은 재무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선진화된 금융기법을 사용하게 됐으며 지극히 위험 회피적으로 변하였다.
대기업과 고소득층은 자금을 언제나 원하는 만큼 빌릴 수 있는 환경이 됐으나 담보가 없고 신용이 허약한 개인이나 중소기업은 자금을 빌릴 수 없는 신용경색에 처하게 됐다. 신용경색은 자금의 수요를 인위적으로 제약함으로써 이자율을 하락시키는데 외환위기 이후 이자율이 얼마나 빠르게 하락하였는지를 보라. 1998년부터 1999년 사이 금융상품에 따라 크게는 10% 포인트 이상 작게는 5% 포인트 이상 하락했으며 이는 신용경색의 가장 직접적인 증거라고 평자는 본다. 이자율 하락은 금융비용을 낮춰 대기업과 고소득층에게는 전례가 없이 높은 수익성을 달성하는 기회가 되었으나 서민과 중소기업에게는 그림의 떡이 된 것이다.
양극화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첫 번째 관건은 조세가 아니라 금융에 있다고 평자는 믿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경우 정부가 금융부문에 개입할 여지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양극화 해소를 위해 금융부문을 움직인다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따라서 금융기관들 특히 은행부문이 스스로 위험을 보다 많이 받아들이고 공공성을 회복함으로써 서민과 중소기업에 대해 신용의 이용가능성을 확대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만일 이와 같은 변화가 여의치 않다면 신용경색에 처한 경제주체들을 전담할 특수 은행을 하나 설립하는 것은 어떨까? 과거 우리는 기업의 투자자금이 부족할 때 특수은행을 설립해 자금을 확보해 준 적이 있듯이 이제는 특수은행을 설립해 자금이 필요하지만 신용을 이용할 수 없는 경제주체들에게 신용의 이용가능성을 확대함으로써 양극화 해소를 위한 단초를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시도는 과거로의 회귀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과거이면 어떤가. 신용의 이용가능성을 확대하는 것 이외에 금리라든지 자금의 모집 그리고 고객의 신용평가 등은 시장원리에 맡긴다면 과거와는 전혀 다른 순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 이 시점에서 이와 같은 목적의 은행이 설립된다면 기존의 은행들보다 위험을 더 많이 받아들이는 은행의 등장이므로 과거로의 회귀라기보다는 은행 산업의 다각화라고 평자는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