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횡령 및 분식회계로 지배주주 일가를 포함한 경영진 다수가 유죄를 선고받기 직전 두산그룹은 지주회사 체제로 그룹을 개편하는 등 그룹 지배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는 지배구조 로드맵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두산그룹은 주총을 앞두고 불과 2달여전의 발표와는 정면으로 상치되는 매우 실망스럽고 심각한 우려를 불러 일으키는 일련의 조치를 취하였다.
두산그룹은 분식회계 등으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 받은 박용만 전 부회장을 (주)두산의 이사로 선임하기로 하였다가 빗발치는 비난 속에 주총 직전에 철회하였다. 비록 마지막 순간에 옳은 결정을 내린 것은 다행이나 기업과 주주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친 경영진이 이에 상응한 처벌을 받기는커녕 몇 달 만에 버젓이 경영에 복귀하려고 시도한 발상 자체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뿐만 아니라 기업경영 경험이 전무한 박용현 전 서울대병원장을 포함하여 지배주주 일가를 계열사 이사로 전진 배치하였다. 이러한 조치는 외국인 CEO 영입을 포함하여 전문 경영인에게 경영을 맡기고 지배주주 일가는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겠다는 불과 2달여전의 약속을 어기고 지배주주 일가의 그룹경영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로 밖에 볼 수 없다.
지배구조 역시 개악되는 방향으로 변경되었다. 이사진의 임기를 분산시켜 선임하도록 하는 시차임기제의 도입은 이사진 전원의 교체가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지배주주가 장악하고 있는 현 경영진의 경영권이 위협될 소지를 원천적으로 봉쇄하였다.
소액주주가 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 집중투표제를 폐지함으로써 소액주주들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조치 역시 폐기하였다. 등기이사가 아닌 사람도 회장으로 선임될 수 있다는 방안 역시 책임경영과는 거리가 멀며 기존 지배주주 일가가 회장직을 유지할 수 있도록 고안해낸 조치일 뿐이다.
두산그룹의 어떠한 설명으로도 납득되지 않는 또 하나의 조치는 분식회계로 유죄를 선고받고 경영에서 물러나는 전문 경영인에게 스톡옵션을 부여한 것이다. 스톡옵션은 본래 과거 경영성과에 대한 보상이라기 보다는 향후 경영에 대한 동기부여의 수단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회사와 주주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치고 유죄를 선고받은 경영진에게 주어지는 스톡옵션은 그 근본 취지와는 상관없이 지배주주에게 멸사봉공한 경영진에게 내려지는 은퇴 상여금일 뿐이다.
두산그룹의 이번 조치는 우리나라 재벌 일가들이 자신들의 경영권을 사수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일 뿐 지배구조 개선에 아무런 관심이 없으며, 그토록 불평해온 반기업정서의 원천이 바로 자신들임을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 기업들의 진정한 지배구조 개선과 책임경영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먼저 분식회계, 배임 등을 저지른 경영진들에게 이에 적절한 처벌이 부여되어야 할 것이다.
지배구조 개선, 윤리경영에 앞서 법을 준수하면서 기업을 경영하는 준법경영은 경영진에 대한 너무나 기본적인 주문이다. 적발되지 않으면 좋고, 설사 적발되더라도 솜방망이 처벌만 받고 경영에 복귀할 수 있다면 분식회계, 배임, 횡령 등으로 자신의 사욕을 채우려 할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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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장이 최근 지적한 바와 같이 기업과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끼친 경영진에 대한 미약한 처벌은 결국 이러한 범죄를 예방하기 보다는 조장할 뿐이다.
최근 우리나라 기업들은 외국인 지분의 증가를 핑계로 경영권 방어장치의 도입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두산그룹의 사례에서 보듯 이미 기업들은 지배주주의 경영권을 보호할 충분한 장치를 보유하고 있고 이를 남용하고 있다. 차등의결권, 황금주 등 일련의 경영권 방어장치의 도입은 결국 지배주주와 기존 경영진의 참호구축을 도울 뿐 책임경영과 지배구조 개선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경영권 방어장치의 도입보다는 도리어 적대적 M&A를 포함한 인수·합병 시장을 활성화함으로써 시장 기능에 의해 탈법을 저지르고 능력이 없는 경영진이 지배주주 여부에 상관없이 쉽게 교체될 수 있는 활로를 열어야 할 것이다.
작년부터 시작된 두산그룹과 관련된 사건 전개는 실망과 우려만을 자아낼 뿐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에게 있어 더 이상 이러한 일이 재발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