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이건희 회장 일가가 8000억원을 조건없이 사회에 헌납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그 동기에 대해 논란도 많지만 부자의 사회공동의 선을 위한 기부행위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앞으로 삼성이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기업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보기로 하자.
문제는 삼성이 헌납금의 관리주체나 용도에 관해 사회에 백지위임함으로써 온갖 추측과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마침내 관리주체에 대해 대통령이 "정부가 나서서 과정과 절차를 관리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함으로써 곧 정부 주도의 공론화 과정을 거쳐 헌납금의 관리주체와 조직 등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 후 이 돈의 용도에 관해 검토가 이루어지겠지만 벌써부터 백가쟁명식의 논의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 자선재단인 록펠러재단이나 카네기재단처럼 교육 공공위생 의학교육 식량증산 과학기술 도서관건립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분산해 사용할 수도 있다.
또는 빈곤세습과 교육기회의 양극화를 막기 위해 저소득계층 및 소외계층을 위한 지원에 중점을 둘 수도 있을 것이다. 재단을 만들어 놓고 운영은 사회에 맡긴다면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병폐를 강조하며 반기업적 활동을 주로 하는 사회단체를 후원하는 미국 재단들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의견도 있다.
앞으로 사회 각계의 의견과 공론화 과정을 거쳐 용도가 결정되겠지만 현재 우리 사회의 정서나 국가적 과제로 떠오른 양극화 해소논의 등을 고려할 때 소외계층 및 저소득계층을 지원하기 위한 용도로 상당부분 쓰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문제는 이 경우 그 돈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느냐에 있다. 단순히 생활보조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현금을 나눠주기보다는 금융메커니즘을 활용하여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를 든다면 빈곤계층에 대한 소액 무담보융자방식 이른바 마이크로크레디트방식을 활용하여 지원할 것을 제안한다.
이 대출방식은 자활의지와 능력은 있으나 담보나 신용이 없어 전통적인 금융기관으로부터 금융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는 빈곤·소외계층의 창업을 지원하고 각종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1970년대 중반 방글라데시에서 한 경제학 교수가 사재를 털어 설립한 그라민은행에서 시작되었다. 이 은행이 크게 성공하여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면서 1990년대 이후 저개발국은 물론 선진국에 까지도 전파되었고 UN에서는 2005년을 '세계 마이크로크레디트의 해'로 선포하기까지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3~4년 전부터 미국 씨티그룹이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으로 100만 달러를 투자한 그라민트러스트에서 5만 달러를 차입하고 개인기부금을 받아 설립된 '신나는 조합'과 다양한 시민단체가 주동이 되고 민간의 기부금과 정부출연금으로 설립된 '사회연대은행'이 마이크로크레디트업무를 취급하고 있다. 여성가장, 일반빈곤층, 신용불량자, 성매매피해여성 등 소외·빈곤층을 대상으로 자활지원 또는 창업자금 대출을 실시하고 있다.
일할 수 없는 노약자나 장애인 등에 대해서는 생활보조금 등 현금지원이 불가피하겠으나 그 용도로는 정부 복지예산에서 주로 담당하는 것이 좋다. 일할 수 있는 두 손과 자활의지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와 같은 금융메커니즘을 활용하여 지원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금융메커니즘을 활용하면 차주의 자활의지와 능력 사업성 등에 대한 철저한 사전검증과정을 거치고 지원 후에도 경제동향이나 경영에 대한 은행의 조언이나 지도가 가능해 그만큼 사업의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전 직원 75%가 장애인인 무궁화전자회사가 흑자기업이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사회는 자활 자립 의지가 매우 강해 생계비보조방식보다는 창업자금대출방식이 훨씬 유용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전 금융통화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