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보업계"대형銀만 살판" vs 정부·은행"시행안할땐 정책혼란"
자동차보험의 방카쉬랑스 허용 여부가 올해 손해보험업계 최대 관심사로 떠오를 전망이다. 손해보험업계는 자동차보험 특성상 손보시장의 혼란과 위기를 가중시킬 것을 우려하고 있고, 감독당국도 방카쉬랑스 확대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데다 대선정국과 맞물려 또다시 연기될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방카쉬랑스는 지난 2003년 9월 1단계로 생명보험의 개인저축성보험과 손해보험의 장기저축성보험, 주택화재, 개인상해보험이 허용됐고 2005년 4월에는 생명보험의 순수보장성상품(소멸형)이 추가 허용됐다. 지난해 10월에는 환급형 순수보장성상품의 방카쉬랑스 판매가 가능해졌다.
내년 4월에는 생명보험의 개인보장성보험(CI, 종신등)과 손해보험의 장기보장성보험, 개인자동차보험의 방카쉬랑스 판매가 허용될 예정이다.
그러나 자동차보험의 경우 한정된 시장에서 총 14개 손보사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은행 등 방카쉬랑스 채널까지 가세할 경우 자동차보험산업이 큰 위기를 겪을 우려가 있는 것으로 지적돼왔다.
◆왜 자동차보험은 안되나=손보업계는 자동차보험의 은행 판매가 허용될 경우 대형은행의 배만 채우게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금융소비자의 경우 지금은 설계사나 대리점을 통해 안방에서도 보험을 가입할 수 있으나, 방카쉬랑스가 허용되면 은행 창구를 직접 찾아가야 하는 불편함이 따른다. 또 은행쪽에 수수료를 줘야 하기 때문에 보험료 수준은 현재와 같거나 온라인 보험료보다 더 비싸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방카쉬랑스가 허용될 경우 새로운 판매채널이 생기는 것이지만, 신시장 개척효과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손보업계의 관계자는 "방카쉬랑스로 판매된 자동차보험은 기존 채널의 고객 이동에 지나지 않는다"며 "특히 자동차보험은 의무보험인데다 차량대수와 연동돼 있기 때문에 새로운 시장개척 효과가 전무하다"고 설명했다.
대신 은행은 우월적 지위로 다른 일반대리점보다 월등히 유리한 대리점 계약조건을 요구할 것이고, 그만큼 높은 수수료수익을 챙길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영세한 설계사나 대리점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손보시장의 37%가 자동차보험이고, 이중 약 97%가 이들 설계사와 대리점에 의해 판매되고 있다. 만일 은행이 자동차보험을 판매하게 된다면 은행의 채널점유가 늘어나는 만큼 이들 영업조직의 설자리는 줄어들게 된다.
◆중소형사 도태 등 혼란 우려=보험업계도 심각한 도태현상이 벌어질 우려가 있다. 은행들은 브랜드 파워가 뛰어난 대형보험사들과 제휴하기를 원하고 있고, 실제로 현재 은행과 방카쉬랑스 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중소형사들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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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화재와 현대해상 등 대형사들은 거의 대부분의 은행과 제휴를 맺고 있는 반면, 한화손해보험, 대한화재 등 중소형사들은 1~2개 은행에 그치고 있거나 아예 없다.
따라서 중소형손보사들은 은행대리점을 많이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계약마저 은행들에 의해 대형손보사로 빼앗기는 아픔까지 맞볼 수 있다.
보험업계의 관계자는 "문제는 중소형손보사 중 상당수가 재무구조가 취약하다는 점"이라며 "자동차보험의 영업부진으로 파산 등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자동차보험 산업은 온라인보험이 등장한 이후 출혈경쟁 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해 11월 현재 손해율이 80%에 육박하고 있는데다 영업적자도 6000억원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손보업계는 방카쉬랑스가 허용되면 은행 등의 무분별한 판매로 손해율이 더욱 악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대선정국, 방카쉬랑스 연기에 무게?=금융당국과 보험업계 일각에서는 올해가 대선정국이라는 점을 들어 방카쉬랑스가 연기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손해보험 대리점수는 4만5000여개(개인 포함)이며, 설계사수는 7만7000여명에 이른다. 이중 대리점의 경우 협회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있기 때문에 이들 조직이 정치권을 압박할 경우 '표'를 의식한 정치권에서 이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 영업조직은 온라인 자동차보험이 생긴 이후 자동차보험 영업에서 타격을 입은데 이어 은행까지 판매에 가세할 경우 생계에 지장을 초래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새로운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보험전문가들은 자동차보험의 방카쉬랑스가 허용되면 은행이 높은 고객 접근성과 임직원 판촉을 앞세워 단기간에 자동차보험 시장의 35%를 점유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전문가는 "은행의 채널점유는 자연히 대부분의 영세 설계사와 대리점의 판매감소를 의미한다"며 "이렇게 되면 손보사들은 영업조직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게 될 것이고, 최소 1만여명 이상이 실직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영업조직의 집단 반발과 대선정국이 맞물릴 경우 자동차보험의 방카쉬랑스는 쉽게 허용되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당국, 일관성 없는 정책 비판 부담=그러나 실제로 자동차보험의 방카쉬랑스 시행이 연기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부당국으로서는 두번째 방카쉬랑스 확대를 연기할 경우 일관성 없는 정책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은행권도 이점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은행권은 개인용 자동차보험의 방카쉬랑스 판매허용이 또다시 연기될 경우 일관성 없는 금융정책으로 시장의 신뢰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지난번 연기된데 이어 이번에 또 시행시기를 미룬다면 은행 입장에서 정부와 금융감독기관에 대한 신뢰는 크게 떨어질 수 밖에 없다"며 "이것은 정책의 일관성 문제"라고 강하게 지적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자동차보험이 영업적자에 허덕이는 것은 높은 손해율 때문인데 방카쉬랑스 등 판매채널 확대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시중은행들은 전산개발 등 관련 인프라 구축에 차질을 빚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보험상품인 자동차보험을 은행에서 판매하기 위해서는 전산개발이 필수적이라 은행들은 이미 전산개발을 마쳤지만, 판매허용이 한차례 연기되면서 사실상 전산개발비만 허공에 날렸기 때문이다.
이에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애매모호한 결정을 내리지 말고 (방카쉬랑스를) 한다면 언제 반드시 한다고 말하거나 또는 아예 개방을 하지 않겠다고 못박아줬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