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들의 거센 도전...삼성電 "장기전으로 헤게모니 되찾는다"
삼성전자를 사는 해외 투자가들이 달라지고 있다. 장기투자를 선호하는 글로벌 펀드 등에 비해 헤지펀드에서 삼성전자를 입질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중장기 투자보다는 단타 위주의 세력이 선호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 반도체 애널리스트는 22일 "지난주 해외 투자가들을 만나고 왔는데, 시각들이 많이 달랐다"며 "장기투자가들은 삼성전자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는 반면 헤지펀드의 경우 주가가 많이 빠졌으니 매수시기라고 보고 있었다"고 말했다.
해외 장기투자가들은 삼성전자에 대해 중장기적으로 불안해 하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삼성전자의 헤게모니 약화가 그 핵심 논리다. 과거처럼 강력한 시장지배력을 바탕으로 다른 하위업체들을 진압, 시장을 평정할 능력이 크게 약해져 있다는 것. 워런 버핏이 주장하듯 시장지배력이 높은 기업은 자신의 의도대로 시장을 꾸리며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는데, 삼성전자는 이미 과거의 강력한 카리스마를 잃었다는 게 정설이다.
22일 삼성전자 주가가 모처럼 기지개를 켜고 있다. 지루할 정도로 하향추세를 보이는 가운데 이날 1시 57분 현재 전일 대비 1만원(1.81%) 오른 56만2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반짝 상승'일까, 횡보 끝 상승 시작일까.
전문가들 사이에서조차 설왕설래하고 있다. △상승을 위한 기본 전제는 무엇일까 △반도체 특히 D램 가격은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까 △삼성전자의 전략이 먹혀들까… 향후 삼성전자의 주가 추이를 결정지을 핵심 질문들이다.
◇D램 가격이 더 떨어져야 좋다(?)=역설적이지만 이같은 논리를 펴는 전문가들이 늘고 있다. 어차피 가격이 예상보다 더욱 많이 떨어진 상태다. 추가로 D램 가격이 더 떨어지면 결국 견디지 힘든 업체를 중심으로 생산량 감소, 투자 유보 등에 나설 수밖에 없다.
김장열 현대증권 애널리스트는 "현재 D램 업체들은 '이 고지만 넘으면 된다'는 식으로 버티고 있다"며 "어차피 적자가 누적된 상태에서 생산량을 줄이거나 투자계획을 유보한다고 당장 좋아질 것도 없다는 인식이 작용하고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영준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추가로 가격이 떨어지면 공급량이 빠르게 위축될 것"이라며 "이런 점에서 추가하락은 제한적이고, (삼성전자의) 수익성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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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들의 반란, 그 결과는=D램 시장이 현재처럼 극심한 공급초과 현상을 보이며 모든 업체들이 고전하는 이유는 '무한 경쟁' 때문이다. 그 이면에는 절대강자였던 삼성전자의 위축이 놓여 있다.
D램 시장을 삼성전자가 주무르던 시절, 다른 업체들은 마냥 삼성전자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삼성전자가 생산량을 늘리는지, 차세대 신제품을 언제 얼마나 내놓을 것인지, 가격전략을 어떻게 펴 나갈지에 따라 신속하게 맞춰 나갔다.
하지만 2, 3년전부터 삼성전자의 헤게모니는 크게 약해졌다. 마이크론테크놀로지(미국) 난야테크놀로지 파워칩(대만) 키몬다(독일) 등은 적극적인 설비투자와 합종연횡을 통해 생산성과 생산량을 동시에 높여 나갔고, "이제 삼성전자와 붙을 만하다"는 자신감을 키웠다.
삼성전자는 예전 같으면 당장 다른 모든 업체들을 상대로 융단폭격을 실시했을 것이다. 첨단 고부가제품으로 발빠르게 주력제품군을 이동시키며 범용제품에서 '파괴적인 가격인하'를 단행해 마이너업체들의 숨통을 바짝 조일 수 있었을 터다.
하지만 오랜 기간 짓눌렸던 마이너들은 이제 체력도 좋아졌고, '학습효과'도 갖고 있다. 삼성전자를 상대로 정면승부에 나설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게릴라식 버티기 전략'을 펼 수 있는 힘을 확보했다.
정창원 대우증권 애널리스트는 "마이너업체들의 겁이 없어졌다"며 "삼성전자의 카리스마 약화가 펀더멘털상의 치명적인 약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D램 가격은 올들어 예상보다 더욱 큰폭으로 떨어지고 있다. D램 주력제품인 DDR2 512Mb D램 가격은 지난해말 6.22달러에서 21일 현재 1.69달러로 떨어졌다. 평균 원가(1.9~2달러) 수준을 밑돌고 있다.
이를 놓고 삼성전자, 하이닉스 그리고 다른 업체들의 '치킨 게임(chicken game)'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누가 먼저 겁을 먹고 차에서 뛰어내릴 지', '과연 벼랑으로 떨어지는 사례가 나올 지' 초점이 모인다.
◇장기전을 준비하는 삼성전자=김장열 애널리스트는 "시장지배력이 많이 떨어진 삼성전자 입장에서 현재 사용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별로 없다"며 "D램 출하 속도가 3/4분기에 어떻게 진행될 지 현재로선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외국 반도체업체들은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예전처럼 D램 생산을 플래시메모리 쪽으로 돌릴 것을 기대하는 눈치지만, 삼성전자는 현재 뚜렷한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생산성 향상, 비용절감 등을 통해 보다 공격적인 전략을 펼칠 가능성이 유력하다. 이는 "더이상 양보는 없다. 정면 승부를 원한다면 기꺼이 응해주겠다"는 능동 전략이다. 비록 3/4분기 또는 올해말까지 '출혈경쟁'으로 수익이 낮아진다해도 시장지배력을 놓치지 않겠다는 승부수다.
김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가 다시 확고한 1등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 지 장담할 순 없지만 생산성, 현금 보유 등에서 절대적인 우위에 있는 것은 틀림없다"며 "팽팽한 기와 전략의 싸움 속에서 D램 가격이 향후 어떤 추이를 그릴 지 눈여겨 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