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부 강행 입장에 업계는 '눈치보기'
영국의 거대 미디어 기업이 불법 복제된 소프트웨어를 대량 보유해 형사 고발됐다. 소송을 대행하고 있는 BSA(사무용소프트웨어연합)는 소송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해당 회사 이름을 공개하기 어렵지만, 합의금은 30억원 정도라고 밝혔다.
영국 현지 경찰은 이 기업에 대한 현장 수색을 벌이고, 자산을 동결했으며 라이센스 준수에 문제점이 있었는지 밝혀내기 위해 해당 기업의 해외 지사에 대한 조사까지 실시했다. 결국 모든 불법 복제 소프트웨어를 삭제하고 합의안에 따라 정품 소프트웨어를 구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미디어 기업이 불법 소프트웨어 사용업체로 낙인 찍혀 형사 고발까지 당했으니 경영진의 충격도 적지 않았을 터. 독특한 것은 영국 역시 저작권 보호 과정이 권리 침해자의 형사 고발 후 합의를 통해 고소를 취하하는 양상이라는 것이다.
한-미 FTA 체결 후 저작권 보호 조치가 곳곳에서 강화되고 있다. 당장 컴퓨터 프로그램보호법 개정안이 국회 상정을 앞두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역시 친고죄 규정 삭제 여부.
정보통신부는 영리 목적 또는 6개월 내에 침해된 프로그램의 총 시장가격이 100만원을 초과하는 경우만 형사처벌 대상으로 하되, 권리자의 고소 없이도 기소할 수 있도록 친고죄 규정을 삭제하겠다는 방침이다. 단속의 실효성과 형평성을 확보하고, 프로그램 저작권 보호를 강화시켜 관련 산업 성장을 촉진시키겠다는 취지지만 정작 소프트웨어 제조사들은 반기를 들고 있다.
업체들은 비친고죄 도입으로 저작권 침해자가 일방적인 처벌을 받을 경우, 오히려 정품 사용을 유도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형사 처벌로 '죄값'을 치르고 나면 굳이 해당 소프트웨어를 구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업체들은 잠재적 고객사에게 민심만 잃고 실익을 얻지 못하면 자칫 개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검찰이 형사 처벌 진행 과정을 저작권자에게 통지할 의무가 없다는 점도 우려하는 부분이다. 형사 소송이 집행 중인 저작권 침해자를 저작권자가 일일이 찾아내, 민사 소송을 진행하는 것도 비용이나 시간 면에서 쉽지 않은 일이다. 국내 소프트웨어업체들 중 상당수(115개사)는 SPC(한국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에 저작권 관리 및 소송을 맡기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송이 형 집행으로 이어지지 않고 피해 규모를 산정해 합의금을 받고 정품 사용을 유도하는 선에서 마무리돼왔다. 친고죄 조항이 삭제되고 비친고죄가 적용되면 형사 처벌 전 합의는 불가능해진다. 저작권자 입장에서는 형사 처벌 여부를 무기로 피해액을 구제받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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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SPC는 FTA 저작권 조항 해석에서 다른 견해를 피력해왔다. 'legal action(법적인 조치)'이 반드시 기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may(~해도 된다)'라는 표현 역시 친고죄를 적용해도 된다는 의미이므로 굳이 비친고죄를 강행할 필요는 없다는 것.
하지만 비친고죄 도입에 대한 정통부의 의지는 강경한 상황이다. 불법 복제를 근본적으로 뿌리뽑기 위해서 불가피한 조치라는 것. 이렇다보니 SPC도 정통부의 강행 의지에 숨을 죽이고 있는 상황이다.
한 소프트웨어업체 관계자는 "한-미 FTA 조항 어디에도 비친고죄를 의무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내용이 없는데 굳이 강행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저작권 보호 조치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친고죄냐 비친고죄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결국 저작권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인 만큼 비친고죄를 도입하더라도 개정안에 업계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도록 정통부가 좀 더 열린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