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유치'보다 '대출' 선호하는 벤처CEO

'자본유치'보다 '대출' 선호하는 벤처CEO

정호창 기자
2008.07.17 09:13

[thebell note]지분희석 우려해 투자 꺼려..'실리'보다 '지위'에 집착

이 기사는 07월16일(09:10) 머니투데이가 만든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99:1'

우리나라 벤처기업들에게 1년간 흘러 들어가는 돈을 자금 성격에 따라 구분한 수치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중소(벤처)기업에 금융권으로부터 신규 대출된 자금은 약 111조원이다. 반면 같은 기간 벤처캐피탈이 벤처기업에 투자한 금액은 약 1조2000억원이다.

즉, 지난해 우리나라 벤처기업들이 운영자금으로 사용한 돈의 99%는 대출금이고, 1%만이 자본 투자금이란 얘기다.

이를 두고 벤처캐피탈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의 지나친 융자 위주 벤처육성 정책과 벤처기업 CEO들의 경영권 집착이 합쳐져 나온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기업이 운영자금을 만드는 방법은 크게 분류해 두 가지다. 하나는 '대출'이고 다른 하나는 자본금을 '투자' 받는 것이다.

금융기관에 담보나 보증을 제공하고 받는 '대출'은 이자비용도 부담해야 하고 부채로 계상되기 때문에 재무구조를 악화시킨다.

반면 회사 주식을 발행해 준 대가로 '자본 투자'를 받으면 재무구조도 건전해지고 금융비용 부담도 없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주식수가 늘어나는 만큼 기존 주주 입장에선 지분율이 희석되는 문제가 있다.

두 가지 방법이 모두 가능하다면, 당연히 후자인 '투자'를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부분의 벤처기업 사장들은 전자를 선택한다. 정부 정책으로 인해 벤처기업 인증만 받으면 기업대출이 쉬운 탓도 있지만, 근본적 이유는 기업 입장이 아니라 기업주의 입장에서 결정을 내리기 때문이다. 투자를 받아 지분율이 희석되면 경영권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결정적이다.

창업자로서 '내가 어떻게 키운 회사인데, 남에게 주나'라는 생각이 회사의 미래보다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셈이다. 주식회사를 '내 회사'로 생각하는 우리나라 창업자들의 오랜 고질병이 21세기에도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현실이다.

해외에서 벤처투자와 관련된 일을 했거나 공부를 한 전문가들은 국내에 들어와 이런 국내 벤처기업 CEO들과 투자 상담을 하면 처음엔 모두 깜짝 놀란다. 미국처럼 우리나라보다 벤처산업이 훨씬 발달한 곳에선 보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탈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한 금융사 대표는 "미국에선 엔지니어가 창업을 한 뒤 일정 규모로 성장하면 벤처캐피탈로부터 투자를 받고 자신은 최고기술책임자(CTO: Chief Technology Officer)로 물러나 기술개발에 전념하는 일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우리나라 엔지니어 출신 대표들은 벤처캐피탈을 회사를 뺏으려는 사기꾼 내지 악당으로 생각한다"며 "투자 상담을 할 때마다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밝혔다.

해외 유학파인 다른 벤처캐피탈 대표도 "미국 창업자들은 자리보다는 실리를 택하는 기능(function)의 개념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한국 창업자들은 대표이사 자리에 집착하는 지위(rank)의 개념을 더 중요시 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그는 "기술개발에 탁월한 재능이 있으면서 기업 경영에도 뛰어난 수완을 보이는 '슈퍼맨 CEO'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엔지니어는 기술개발에 집중하는 역할 분담이 기업의 성장속도를 높이는 지름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국내 벤처기업들이 코스닥 상장만 하면 성장이 정체되는 이유가 바로 창업자가 기술개발에서 손을 떼 벤처의 원동력인 기술력이 약화되기 때문"이라며 "이런 토대에서는 결코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 같은 기업이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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