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채권인수 경쟁 '역주행'

증권사 채권인수 경쟁 '역주행'

황은재 기자, 이도현
2010.02.02 11:43

[Market Watch]시장금리 왜곡 심화..잇단 발행루머, 재무 상태 악화 소문으로

더벨|이 기사는 02월01일(07:01) 머니투데이가 만든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증권사의 채권 인수 경쟁이 도를 넘고 있다. 오로지 인수를 따는데만 신경을 쓰다 보니 발행금리는 왜곡되고 투자자보호를 위한 발행절차는 뒷전이다. 사전 판매가 성행하고 실사(Due diligence)가 생략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심지어 자본력이 부족한 증권사의 경우 부실로 연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증권사의 인수 경쟁이 역으로 기업의 재무활동에도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채권을 발행할 의사도 없는데 발행할 것처럼 투자자를 모집하는 경우도 나타났다. 잇딴 자금조달 루머에 재무 상태가 악화된 것 아니냐는 의심만 받고 있다.

더벨이 1월에 발행된 일반 회사채의 발행 금리와 전일자 민간채권평가사의 평가 금리를 비교한 결과 최대 0.43%포인트, 최저 0.06%포인트 차이를 보였다. 민평금리가 더 높았다. 25일에 발행한 대상132회차의 경우 전일 민평금리는 6.33%. 발행금리는 5.90%였다. 조사대상 10개 채권 모두 평균 0.20%포인트 가량 발행금리가 낮았다.

이달 중 시장금리가 하루에 20bp 이상 변동을 보인 적이 없음을 감안하면 민평금리가 잘못됐거나 발행금리가 낮았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DCM 담당자들은 낮은 발행금리에 손을 들어줬다. DCM 시장을 놓고 증권사간 경쟁이 격화되면서 금리가 낮아도 일단 인수하고 보자는 움직임을 보인다는 것이다.

현대산업개발의 경우 6.10%에 태핑했지만 인수 신청이 몰리자 금리입찰을 통해 6.00%로 발행금리를 낮췄다. 5.0%대 금리도 가능했지만 현대산업개발 측이 너무 낮게 발행금리를 결정할 경우 증권사가 판매하는 데 문제가 생기고 시장을 왜곡시킬까봐 6.00%로 결정했다는 후문이다.

회사채 발행 과정을 무시하는 일은 더 빈번해지고 있다. 평소에 기업 자금담당자를 잘 알고 있고, 신용평가사의 평가 리포트에 의존하거나 기업의 공시보고서 정도만 믿고 채권 발행을 추진하고 있다. 회사를 방문하는 것만으로 듀 딜리전스를 이행했다고 여길 정도다.

정해진 채권발행 과정을 모두 거칠 경우 남는 것 없는 데다 기업들에게 밉보여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이런 증권업계의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발행금리 낮추기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지난 25일 한화건설이 발행한 2.5년만기 회사채의 금리는 6.40%. 전일자 민평금리가 6.78%였다. 0.38%포인트나 낮았다.

보통 발행당일에는 발행금리에 맞춰 민평금리를 조정하지만 한화건설 평가금리는 6.81%였다. 수수료 0.20%포인트를 감안해도 인수한 증권사나 투자자는 평가손실을 입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2월중 발행할 (주)한화의 회사채 역시 금리 후려치기 논란이 일고 있다. 다음달 18일 만기도래하는 500억원을 상환하기 위해 태핑중인데 회사측이 요구하는 금리 수준은 5.50% 내외로 민평 금리보다 0.30~0.40% 가량 낮은 터무니없다는 것이다.

A증권사 DCM담당자는 "기업들이 지나치게 낮은 금리로 발행해줄 것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며 "증권사는 실적도 쌓아야하고 나중에 관계를 생각해서 인수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기업들이 여러 증권사에 채권 인수를 종용하고 있고 이로 인해 인수단 구성이 늘어나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DCM 시장이 혼탁 양상으로 치닫자 수량 중심에서 수익성 중심으로 딜 참여 원칙을 바꾼 곳도 나타나고 있다. 대우증권은 수익성을 검토하는 위원회를 설치하고 수익성이 떨어지는 딜에 대해서는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대우증권 관계자는 "할일이 없어 놀지 않기 위해 DCM에 뛰어들기 보다는 차라리 휴가를 가는 편이 앞으로 창의적인 딜을 하는 데 보탬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수량보다는딜의 질적인 수준으로 평가를 받고자 한다"며 "경쟁보다는 내실을 추구할 계획"이라 덧붙였다.

DCM 부문의 경쟁 격화가 증권사만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기업의 재무활동을 방해하고 평판 위험을 키우고 있다. 기업이 증권사에 "지금 회사채를 발행하면 어느 수준과 규모로 할 수 있겠냐"고 묻기만 해도 곧장 'ㄱ회사가 채권을 발행한다'로 와전되는 경우가 일어나고 있다.

신용등급이 높은 기업이라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모기업이나 계열그룹의 재무상태가 악화되나 경우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대한통운이 대표적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 계열사인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의 워크아웃 신청으로 회사채 발행을 취소한 적이 있다. 1월 들어 다시 태핑설이 돌았다.

대한통운 관계자는 "지금팀의 일상적인 활동까지 회사채 발행으로 연결시키고 있다"며 "확대해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일갈했다.

현대백화점도 같은 경우다. 증권사들은 1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할 것이라며 흥행몰이에 나섰고 증권사들끼리 발행사와는 협의도 없이 주관사까지 선정했다는 후문도 들렸다. 마치 뒷골목에서 주인은 아니지만 구역 관리를 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증권사 관계자는 "이는 최근 회사채 인수에 대한 증권사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며 "실적 때문에 기업들의 정상적인 자금집행에까지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시장 참여자들이 자성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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