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가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걱정이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정의 의미를 가르쳐주고 좋은 친구를 가려 사귈 줄 아는 안목을 길러주는 게 최선이다.
섣불리 그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어렵기도 하거니와 자녀의 반발만 살 수 있다. 자녀를 과잉보호하는 것은 이들을 건강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유약하게 키우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지난 수 년 동안 증권시장을 대하는 금융당국은 '최선'보다 어렵고도 효과가 없는 길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일종의 '노파심'이 작용한 탓일 것이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노파심'은 '필요 이상으로 남의 일을 걱정하고 염려하는 마음'이라고 정의돼 있다.
금융당국이 지난 3년 동안 금융투자산업을 육성하는 게 아니라 고사시킨다는 지적을 받아온 것도 이런 접근과 무관하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로 ELW(주식워런트증권)시장이 꼽힌다. 2010년부터 시작된 ELW 규제는 '선량한 투자자 보호'가 목적이었다.
하지만 시장에 진입한 이들은 어디까지나 '자기책임'이라는 투자의 기본원칙에 따라 '고위험·고수익'을 노리고 자기 돈을 댄 이들이었다. 이들 일반 개인투자자가 증권사나 한국거래소를 대상으로 규제 미흡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당국의 '과잉' 규제 와중에 ELW시장 규모는 90% 이상 줄어들어 사실상 궤멸했다. 옵션시장, FX(외환)마진거래시장 역시 유사한 전철을 밟았다. '자기책임'의 원칙을 아는 투자자는 의연한 데도 금융당국만 요란스러웠던 셈이다.
시장건전성을 제고한다는 취지라면 시장을 교란하는 주체만 골라내 엄단하면 될 일이다. 투자자, 증권사, 거래소 등 시장참여 주체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데도 금융당국이 과잉대응에 나서면서 시장은 죽고 참여자들은 만족하지 않는 상황이 초래됐다.
당국은 오히려 주식 현물시장에서 시장의 물을 흐리는 기업들에 대한 대응이 미약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금융당국의 칼날이 투자자들을 유약하게 만드는 쪽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