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비자보호원을 또 하나 만든다고요?" 얼마 전 만난 금융계 인사는 자리에 앉자마자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이 질문을 던졌다.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전담기구(가칭 금융소비자보호원) 설립에 관한 얘기였다. 기자가 대답을 멈칫거리자 그는 "도대체 금융감독원은 왜 있는 거죠"라고 한 수 더 나갔다.
금융소비자보호원 설립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선거기간에 공약한 사항인 데다, 새 정부 출범 후 주요 국정과제로 지정되는 바람에 임기 초반인 현재 '없던 일'로 취급하기 어려운 국면이다. 더구나 여야 정치권이 이 문제에 합의까지 한 상태여서 정부로선 오는 6월 말까지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게 돼 있다. 박 대통령의 공약 여부를 떠나 약자인 소비자를 더 보호하겠다는데 뜯어말리기도 쉽지 않다. 토를 달았다가는 금융회사와 같은 큰 기관 편만 든다는 비판을 받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 인사의 '추궁'을 반박하는 게 궁색하다. 금융감독원이 홈페이지에 올린 설립목적은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감독업무 등의 수행을 통하여 건전한 신용질서와 공정한 금융거래관행을 확립하고 예금자 및 투자자 등 금융수요자를 보호함으로써 국민경제의 발전에 기여함'이라고 돼 있다. 금감원의 각종 검사나 감독 등 주요 업무가 금융소비자 보호에 있다는 것이다.
이 조직을 그대로 둔 채 새 기구를 만들려면 아주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할 텐데 "그간 소비자 보호에 소홀했다"거나 "현행 분쟁조정만으론 소비자를 보호하는 데 한계가 있다" 식의 정치권의 문제제기론 부족한 것 같다.
사실 금융감독이 보다 강화되거나 새로운 보호기구가 만들어져도 일반 예금자나 투자자에게 더 혜택이 돌아간다는 보장은 없다. 기구를 신설하면 인력, 곧 자금이 들어간다. 금감원에선 조직분리에 따른 비용이 앞으로 5년간 1조원 이상 발생한다는 추산도 나온다. 이는 정부 재정이나 금융회사들이 부담할 수밖에 없는데 궁극적으로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오게 돼 있다. 자칫 소비자의 추가 편익 이상으로 비용이 지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이런 지적을 의식해 기존 금감원의 예산이나 인력을 동결한다는 조건으로 소비자보호 기능만 떼내 독립기구를 설치하는 방안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조직의 분리가 소비자보호 업무를 획기적으로 제고할지, 조직간 경쟁으로 인해 금융시장을 위축시키지는 않을지 등을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아울러 기존 금감원을 소비자 친화적인 조직으로 탈바꿈시킬 수 없는지 등 대안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한 번 만든 정부조직을 없애는 데는 대개 신설 때 이상의 진통이 따르기 때문이다.
금융소비자보호원 설치를 주장하는 이들은 미국이 소비자금융보호국(CFPA)을 신설한 점을 부각시킨다. CFPA를 탄생시킨 주역의 한 사람은 '넛지이론'으로 잘 알려진 캐스 선스타인 하버드대 교수다. 정작 그가 백악관 정보규제국 실장 시절 규제 도입시 비용편익 분석을 강조해왔다는 점은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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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스타인 교수는 최근 '포린 어페어즈' 기고를 통해 "경제가 어려운 때 규제는 재앙의 '레시피'로 비춰진다"고 전제한 후 오바마 행정부가 주요 규제를 도입할 때 적용한 원칙을 소개했다. 정량적·정성적인 비용편익 분석과 불확실한 요인, 상당한 대안 등을 명시한 보고서를 제출하되 이를 일반 국민이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요약본을 첨부하도록 한 게 골자다. 요약본을 주문한 것은 미국 연방규제의 상당수가 장황하고 복잡해 도입 취지조차 알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지침은 강요가 아닌 은근한 개입을 뜻하는 '넛지이론' 주창자다운 것이지만 최소한 비용편익 분석을 우선시한 것은 우리도 참고할 만하다고 본다. 세수 부족으로 인해 추가경정예산까지 편성하는 마당에 예산 낭비 가능성은 차단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