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달러 환율, 4년만에 '심리적 저항선' 100엔선 돌파

엔저의 공습이 매섭다. 엔/달러 환율이 4년만에 100엔선을 돌파했다. 심리적 저항선을 뚫은 셈이다. 환율 전쟁에 나선 아베노믹스의 거침없는 질주다.
반면 엔저의 직격탄을 온몸으로 받아야 하는 우리나라는 괴롭다. 엔저의 공포는 현실화됐다. 아베노믹스에 맞선 한국은행의 금리인하 카드는 빛이 바랬다. 양국 증시는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일본 증시의 급등은 승자의 미소를, 한국 증시의 급락은 패자의 슬픔을 보여주는 듯 했다.
10일 오전 일본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101엔선을 돌파했다. 전날 뉴욕 외환시장에서 2009년 4월 이후 처음으로 100엔대를 넘어선 후 상승세(엔 하락세)에 탄력이 붙고 있다. 엔/달러는 지난달 4일 일본은행(BOJ)이 통화정책회의에서 공격적인 추가 완화 정책을 내놓으며 급속한 상승(엔 하락)세를 보였다. BOJ 회의 발표 전 93엔대까지 떨어졌던 엔/달러는 1주일만에 100엔선을 돌파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연말 105엔선, 내년 120엔까지 잡고 있다. 일본은행의 본원 통화 공급 확대 등 '아베노믹스' 기조가 지속되는 한 엔저 흐름을 바꾸긴 어렵다. 오히려 속도와 폭의 '질주'도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다.

반면 한국의 주름살만 깊어진다. 수출은 직격탄을 맞았다. 수출 둔화, 무역수지 흑자폭 둔화가 가시화됐다. 수출 주력 품목인 자동차산업에도 먹구름이 끼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가 발간한 '최근 엔화 약세와 자동차산업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원/엔 환율이 10% 하락하면 한국 자동차 수출액이 12% 가량 감소한다. 2011년 자동차 품목의 수출액 기준으로 추정하면 453억1200만불의 12%인 54억3700만 달러가 줄어드는 셈이다. 최소한의 가격 경쟁력을 유지한다 하더라도 버티기 쉽지 않다.
엔저의 공습은 시장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일본 증시 닛케이 지수는 엔저에 힘입어 2.93% 급등했으나 한국증시 코스피는 1.75%가까이 하락하며 아시아 주요 증시 중 가장 큰 낙폭을 보였다. 일본증시 시가총액 1위인 토요타는 지난 8일 시가총액이 20조엔을 회복한데 이어 이날도 4% 넘게 급등했다. 한국 시총 1위인 삼성전자가 이날 2% 이상 하락한 것과 대비된다. 토요타의 시총은 우선주까지 포함할 경우 삼성전자에 조금 뒤지고 있지만 보통주만 놓고 보면 지난달 이미 삼성전자를 추월했다.
문제는 엔저에 맞설 힘이 있느냐다.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이 핫머니에 힘겨운 환율 전쟁을 이어가고 있지만 쉽지 않다. 호주·인도 등이 금리를 내린데 이어 한국은행도 7개월만에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중국도 불법 해외자금을 규제하는 특단의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이런 '전쟁' 속에서도 '엔/달러 100엔' 시대가 열린 게 현재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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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도 답답하다. 엔/달러 환율이 100엔을 돌파한 이날 외환당국의 분위기는 예상보다 담담했지만 속이 편한 것은 아니다.
외환당국 고위 관계자는 "100엔이 깨졌다고 하지만 100엔은 상징적 숫자일뿐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엔저의 현실을 인정한 것이기도 하다. 산업 차원에선 영향이 불가피하다는 현실 인식도 깔려 있다. 100엔 밑으로 금세 돌아온 들 어려움이 쉽게 가시지 않을 것이란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 업계 입장에서 보면 엔/달러 99엔이나 101엔이나 힘든 것은 매한가지다.
그렇다고 마땅한 묘책도 없다. 환변동보험 지원 등 수출 피해 기업에 대한 대책을 시행하는 정도다. 정부 관계자는 "파고를 견뎌야 하지 않겠냐"라고 말했다.
시장 개입 가능성도 나오지만 쉽지 않다. '강달러-엔 약세'가 만든 흐름 속 여지가 없다. "속도·폭을 예의주시하고 있다"(외환당국 고위관계자)는 정도다. 이날 시장처럼 원/달러가 엔/달러와 비슷하게 움직여준다면 그나마 괜찮지만 급변동은 또다른 걱정거리다. 이날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일 대비 15.1원 급등한 1106.1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일각에선 거시건전성 규제 '3종 세트(선물환 포지션·외국인 채권투자 과세·외환건전성 부담금)' 강화 필요성도 거론된다. 하지만 환율을 목표로 '3종 세트'를 꺼낼 수는 없다. 외환당국 고위관계자는 "3종세트는 과도한 자본 유출입을 막기 위한 장치이지 환율 방어용이 아니다"라고 전제한 뒤 "엔저 등의 영향으로 자본 유출입이 급격하게 이뤄지면 고민해볼 수 있는 문제"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