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연기금, 고점매수·저점매도의 악순환

[기자수첩]연기금, 고점매수·저점매도의 악순환

오정은 기자
2016.06.21 19:40
오정은
오정은

"수익률이 부진할 때 자금을 더 줘야 연기금도 돈을 버는데 규정상 그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연기금·공제회의 내부 사정을 고려하면 수익률이 부진한 곳에 자금을 집행할 수 있는 기관은 사실상 전무하다"

25년 경력의 한 펀드매니저가 말했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공제회는 수익률이 부진한 자산운용사에서 자금을 회수하고 수익률이 양호한 곳에 추가로 집행하는 관행을 유지해왔다.

이를 주식투자에 비유하자면 수익률이 안 좋은 종목은 손절매하고 수익률이 좋은 종목은 더 사는 것과 유사한 방식이다. 이런 방식에서는 고점에 주식을 사고 저점에 주식을 파는 의도치 않은 결과가 나타나게 되는데 그 결과 국민연금의 지난해 주식투자 수익률은 1.67%에 그쳤다. 한국은행 기준금리를 간신히 웃돈 것이다.

펀드매니저들은 "투자철학이 확고한 운용사라면 수익률이 안 좋을 때 투자해서 수익률이 좋을 때 환매해야 돈을 벌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가치주 펀드의 경우 수익률이 부진할 때 꾸준히 투자하면 장기적으로 큰 수익을 볼 수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연기금·공제회의 자금 집행 담당자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알면서도 수익률이 좋은 곳에 자금을 줄 수밖에 없는 이유는 국정감사 때문이다. 감사에서 "왜 수익률이 부진한 곳에 돈을 줬냐"는 질책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데 섣불리 반대로 투자할 수가 없는 셈이다.

연기금의 저점 매도-고점 매수식의 자금집행이 누적된 결과 국내주식투자 수익률이 형편없게 됐고 국민연금은 아예 국내주식투자를 줄이고 있다. 액티브 펀드에 주던 자금을 인덱스 펀드로 돌리고 있다는 소문도 기정사실화된 상태다.

몇 년 전 행정공제회의 한 자금집행 담당자는 당시 수익률이 부진했던 에셋플러스자산운용에 집행한 자금을 회수하면서 일부를 남겨둔 적이 있었다. 관행대로라면 자금을 전액 회수해야 했지만 그는 반대로 했다.

그가 남겨둔 소액의 자금은 이후 대박을 냈다. 당시를 기억하는 펀드매니저는 "투자철학과 원칙이 확고한 자산운용사의 경우 수익률이 부진할 때 투자하는 것이 오히려 기회가 된다는 것을 담당자가 알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박스권 장세가 장기화되며 주식과 펀드 투자에 타이밍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국민연금은 성과 부진을 이유로 국내 주식투자비중을 줄이고 있지만 성과 부진의 원인은 저점매도-고점매수 방식의 '악순환' 자금집행 관행 탓이 크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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