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점수 대신 운전습관… 보험의 틀 깼더니 실적도 달렸다

신용점수 대신 운전습관… 보험의 틀 깼더니 실적도 달렸다

반준환 기자
2026.07.13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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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준환의 미국 스몰 캡] 자동차보험사 '루트'
스마트폰 앱으로 고객 주행기록 분석해 요율 산정
난폭 운전자 걸러 보험료↓ 손해율 54%까지 개선
10년 축적 데이터로 정밀한 가격모델 구축 경쟁력
1Q 순익 539억원 역대 최대, 주가 저점比 18배↑

2020년 10월 미국 오하이오의 디지털 자동차보험사 루트(ROOT)가 기업가치 68억달러, 한국 돈으로 10조원 수준을 인정받으며 나스닥에 입성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2022년 8월 이 회사 주가는 공모가 대비 96% 폭락한 0.95달러(약 1425원)가 됐다. 상장폐지(주가 기준) 위기에 몰렸다. 사흘 뒤 회사는 주식 18주를 1주로 합치는 병합(무상감자 성격의 주식병합)을 단행하며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다.

3년 뒤인 2026년 1분기 그랬던 루트는 창사 이래 최대 분기 순이익을 냈다. 연환산 ROE(자기자본이익률)는 47%. 주가가 바닥 대비 18배 오르며 월가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는다.

루트는 2015년 3월 오하이오 콜럼버스에서 보험계리사 알렉스 팀이 창업한 회사다. 사업모델의 핵심은 스마트폰이다. 가입 희망자가 앱(애플리케이션)을 깔면 몇 주간 스마트폰 센서가 급제동, 급가속, 심야운전 같은 습관을 측정하고 이 운전점수로 보험료를 매긴다. 이전까지 미국 자동차보험업계에서는 운전습관이 아니라 개인고객의 신용점수를 기반으로 보험료를 책정했다.

루트의 CEO(최고경영자) 팀은 "신용점수는 고객이 얼마나 부유한지, 어디 출신인지 알려줄 뿐 어떻게 운전하는지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면서 이를 불합리하다고 판단했다. 안전운전을 하는 고객이 저렴한 보험료를 내는 자동차보험이 그가 생각한 포인트였다.

물론 팀 이전에도 유사한 비즈니스를 펼치는 업체가 있었다. 프로그레시브의 '스냅샷' 같은 1세대 UBI(운전습관 기반 자동차보험)는 차량 진단포트에 꽂는 동글(dongle)을 고객 차량에 설치하도록 했다. 루트는 별도 장치 없이 앱 하나로 대체한 스마트폰 텔레매트릭스의 개척자다.

그렇다면 운전점수는 신용점수보다 정말 돈이 될까. 루트는 난폭한 운전자를 거르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루트 내부자료를 보면 최하위 위험군 운전자들이 대부분 사고를 일으키는데 전통 보험사는 이들의 사고 비용을 전체 가입자의 보험료에 나눠 얹는다. 루트는 이 운전자들의 가입을 거부하고 안전운전자만 받아 보험료를 낮추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기존 보험사보다 최대 52% 저렴한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팀의 판단이었다. 규제기관인 전미보험감독자협의회(NAIC)는 UBI 프로그램이 사고위험을 절반가량 낮추는 것으로 추산한다.

고객들이 UBI에 가입한 이후에는 안전운전에 보다 신경을 쓰는 현상도 관측됐다. 글로벌 투자정보업체 원리포트리서치에 따르면 UBI 가입 6개월 후 보험금 청구 빈도는 평균 21% 낮아졌고 앱을 자주 확인하는 고위험 운전자군은 운전 중 휴대폰 사용시간을 20%, 과속시간을 27% 줄였다.

루트(ROOT) 주요 연표/그래픽=김다나
루트(ROOT) 주요 연표/그래픽=김다나

루트는 창업 후 10년간 시험운전 데이터를 쌓으며 가격모델을 세대 단위로 업데이트했다. 위험운전을 정밀하게 측정하는 것에 최선을 다했고 △고객들이 보험에 가입한 후 운전습관을 상시측정하는 연속 텔레매트릭스 △차량에서 직접 주행 데이터를 받는 커넥티드카 연동 △외부 텔레매트릭스 데이터 활용을 통한 보험료율 즉시 산정 등의 서비스를 강화하는 중이다.

미국 보험사들은 당초 루트의 성공에 회의적이었다. 처음에는 난폭운전과 안전운전의 경계가 모호한 이들이 있었고 고객유치를 위한 마케팅 비용도 천문학적으로 투입됐다. 이 과정에서 회사가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2022년 1~9월 루트는 순수입보험료 2억2160만달러(약 3324억원)를 받아 보험금과 손해조정비로 2억7330만달러(약 4100억원)를 지급했다. 손해율 123%. 보험료는 100원을 받는데 사고보험금으로 123원이 지출된 꼴이다.

루트는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간 11억8000만달러(약 1조77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2023년에는 마케팅 비용을 전년 대비 80%까지 줄였다. 회사가 곧 넘어질 수 있다는 소문까지 돌면서 인수제안까지 들어왔다.

반전이 이뤄진 것은 2024년. 신규고객 유치를 사실상 멈춘 2년간 루트는 그동안 쌓인 시험운전 데이터로 가격모델과 인수심사 알고리즘을 통째로 재구축했다. 난폭운전과 안전운전의 모호하던 경계가 데이터 누적으로 정밀해졌고 위험운전자를 걸러내는 관문이 촘촘해졌다.

결과는 놀라웠다. 2022년 123%던 손해율이 2024년에는 60% 미만으로 절반 넘게 낮아졌다. 이는 미국 보험업계에서도 최고 수준이다.

마케팅도 합리적으로 재구축했다. 머신러닝(기계학습)이 실시간 입찰로 광고 단가와 예상 손해율을 대조해 목표 수익성이 확보되는 고객만 골라 데려오는 방식이다. 마침 미국 자동차보험료가 업계 전반적으로 급등한 시기라는 순풍도 탔다. 루트의 보유계약은 2024년 한 해 21% 늘었다.

수익성 개선도 함께 이뤄졌다. 과거 루트는 자금압박 때문에 유치한 보험의 절반 이상을 재보험사에 넘기는 방식으로 계약을 유동화해야 했다. 그러나 손해율이 낮아지면서 재보험사에 유동화하는 계약을 줄였고 이는 고스란히 회사의 이익으로 반영됐다. 재보험 유동화 비율은 2023년 37%였는데 2024년에는 13%로 떨어졌다.

여기에 제휴업체 카바나(미국 최대 온라인 중고차 판매업체) 임베디드 채널의 신규계약이 한 해 만에 2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모델 고도화 △선별 마케팅 △재보험 회수 △임베디드 유통 4개의 톱니가 맞물린 결과가 2024년 창사 첫 흑자 3090만달러(약 464억원)다.

루트가 다른 UBI와 갈리는 지점은 텔레매트릭스의 지위다. 프로그레시브의 '스냅샷', 스테이트팜의 '드라이브 세이프 앤드 세이브' 같은 대형사 UBI는 나이·신용점수 등 전통 변수로 기본 보험료를 매긴 뒤 운전 데이터로 할인이나 할증을 얹는 보조장치다. 할인만 못 받을 뿐 난폭운전자도 가입은 받아준다. 반면 루트는 텔레매트릭스가 요율의 중심 변수다. 시험운전을 통과하지 못하면 아예 고객으로 받지 않는다.

2025년 실적은 더욱 드라마틱하게 개선됐다. 연간 매출은 15억1710만달러(약 2조2757억원)로 전년 대비 29% 늘었고 순이익은 4030만달러(약 605억원)를 기록했다. 손해율은 연중 58~59%선을 유지하며 회사의 장기목표(60~65%)를 계속 밑돌았다. 재보험사에 넘기는 계약은 더 줄었다. 유동화 비율은 2024년 13%에서 2025년 4%까지 떨어졌다. 유치한 보험의 96%를 자기 장부에 두는 정상적인 보험사가 된 것이다.

성장의 축도 다변화했다. 독립 설계사 채널의 신규계약이 1년 만에 3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성장세가 빨라지면서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졌다. 지난해 3분기 루트는 540만달러(약 81억원)의 분기 순손실을 냈다. 카바나와 제휴한 보험가입이 급증하면서 루트가 일시지급할 판촉비가 급증한 것이다.

중고차 플랫폼 카바나는 2021년 8월 루트에 1억2600만달러(약 1890억원)를 투자하며 손을 잡았다. 루트 입장에선 소비자가 차를 사는 순간 보험을 끼워 파는 임베디드 보험을 개척한 것이다. 카바나는 판촉비를 현금으로 받아도 되고 루트의 지분을 살 수도 있는 워런트를 가지고 있다. 루트는 미지급 판촉비(1700만달러, 약 255억원)를 일단 비용으로 계상해놨지만 이는 다시 증자자금으로 유입될 수 있는 성격이다.

루트 주가 추이/그래픽=김다나
루트 주가 추이/그래픽=김다나

◇2024년 주가 7달러→2025년 162달러 '23배'

올해는 본격적인 수치가 나오기 시작했다. 2026년 1분기 루트는 순이익 3590만달러(약 539억원)로 창사 이래 최대 분기 실적을 냈다. 한 분기 만에 지난해 연간 순이익의 89%를 벌어들인 셈이다. 손해율은 54.5%까지 내려왔다. 연환산 ROE는 47%. 미국 대형 손해보험사들도 넘보기 힘든 수익성이다.

5월에는 2억달러(약 3000억원)의 차입금을 이자율 2.25%포인트를 낮춰 차환해 연 450만달러(약 68억원)를 아꼈고 7500만달러(약 1125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승인했다. 메건 빙클리 루트 CFO(최고재무책임자)는 어닝콜에서 "1분기 기록을 감안하면 올해 순이익이 지난해를 넘어설 것"이라고 밝혔다.

루트는 한국과도 연관이 있다. 2025년 4월 현대캐피탈아메리카(HCA)와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HCA는 현대차·기아·제네시스의 미국 판매금융을 담당하는 현대차그룹 금융사로 미국 전역의 1800개 딜러망과 누적 270만명 이상의 고객을 보유했다. HCA 고객이 현대차·기아 자동차를 할부나 리스로 구매하는 과정에 루트의 데이터 기반 보험이 결합하는 구조다.

루트 주가는 2024년 2월9일 7.58달러였으나 이후 급등하며 2025년 3월에는 160달러를 넘겼다. 지난 10일 종가는 64.36달러다. 2년여 전보다 크게 높지만 고점 대비로는 많이 빠졌다. 투자 측면에서 성장잠재력이 크지만 월가에서는 최근 보수적인 접근이 보인다. 그간 주가가 크게 오르기도 했고 UBI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루트의 성장세도 다소 둔화하는 추세여서다. 보유계약 증가율은 1년 전 20%대에서 최근 9%로 내려왔고 자동차 보험료 인상 사이클이 꺾이면서 프로그레시브 등 대형사들이 다시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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