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여년 전 '삐삐'라고 불리던 무선 호출기가 유행한 적이 있다. 단순히 호출 번호를 남기는 기능도 있었지만, 음성사서함에 녹음을 하는 묘미가 더 컸다. 그러나 음성사서함은 온전히 자신만의 것이 아니었다. 비밀번호만 알면 누구나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헤어진 연인의 근황이 궁금해 몰래 상대방의 비밀번호를 유추해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 때 가장 애용됐던 번호가 '1111' 혹은 '1234'였다.
10여년이 지나 IT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비밀번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여전히 제자리다. 이와 관련해 최근 미국의 한 보안업체가 인상적인 자료를 하나 발표했다. 해커가 입수한 소프트웨어 업체의 회원 정보를 분석했더니 유추하기 쉬운 비밀번호가 대다수였다는 내용이었다. 자료에 따르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비밀번호는 '123456'과 '12345'였다.
실제로 주변을 둘러보면 비밀번호에 대해 안일하게 대처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비밀번호 변경에 대한 무감각이다. 현재 주요 포털사이트들은 일정 기간 비밀번호를 변경하지 않으면 "회원님의 아이디는 비밀번호 변경 대상입니다"라는 문구를 노출한다. 오랜 기간 똑같은 비밀번호를 사용한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비밀번호를 바꾸라는 일종의 '경고'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은 '다음에 변경하기'를 선택하기 십상이다. 번거롭다는 이유에서다. 바꾼 비밀번호를 기억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10여년전 인터넷 사이트가 본격적으로 태동하면서 '별 생각없이' 만들었던 비밀번호를 오랜 기간 고집하는 사람들도 많다. 가입한 사이트가 수십개에 이르는 상황에서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번거롭다는 이유로 시작된 안일함에 대한 대가는 혹독하다. 소중한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것은 물론 범죄에 악용되기도 한다. 한동안 떠들썩했던 '메신저피싱'부터 최근 싸이월드의 '도토리' 유출까지 모두 이러한 안일함에서 시작됐다. 물론 관리업체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지만, 비밀번호를 정말 '비밀'로 하려는 노력 역시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