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5일 서울 종로의 한 식당.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을 필두로 이석채 KT 회장, 정만원 SK텔레콤 사장, 이상철 통합LG텔레콤 부회장이 한 자리에 모였다.
최 위원장은 업계 최고경영자(CEO)들과 신년간담회 형식으로 마련한 이 자리에서 "제대로 된 경쟁"을 주문했다. 최 위원장은 "통합LG텔레콤 출범으로 통신시장의 본격적인 경쟁시대가 시작됐다"며 "현금을 주는 보조금 경쟁은 가급적 지양하고 통신3사가 본원적인 경쟁을 통해 세계로 뻗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신업계 CEO들도 이구동성으로 현금까지 동원되는 보조금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석채 회장은 "현금 주는 것부터 없애면 경쟁이 제대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철 부회장도 "통신3사가 쓴 보조금 8조원을 연구·개발(R&D)에 썼으면 이미 (한국에서) 애플이 나왔을 것"이라고 거들었다.
이날 간담회에서 통신업계 CEO들이 쏟아낸 발언들로만 보면 올해부터 통신시장에서는 현금까지 동원해 가입자 쟁탈전을 벌이는 진흙탕 싸움이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같은날 기자의 휴대폰에는 이같은 기대감을 무너뜨리고 통신업계 CEO들의 발언을 무색하게 하는 1통의 문자가 날아들었다. '초고속인터넷, 현금 30만원 지급, 국내 최저요금제, 15~30% 할인혜택, 본사직영(070-7***-****).'
전화를 걸자 상담원은 모 통신사의 초고속인터넷, 전화, 인터넷TV를 묶은 결합상품을 이용하면 현금 30만원과 다양한 혜택까지 준다고 설명을 해줬다. 또 초고속인터넷만 가입하면 15만원까지 현금지급이 가능하다고 친절하게 덧붙였다.
한창 시장경쟁이 불붙었을 때 초고속인터넷 단독상품 가입시 현금보조금이 30만원에 달한 점을 고려하면 현재 보조금 수위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이는 통신업체들이 연말연초 조직개편의 어수선함에서 벗어나 영업에 시동을 걸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통신업체들이 실적달성을 위해 본격적인 경쟁에 돌입하면 상황은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소비자를 괴롭히는 스팸문자와 전화가 늘어나고, 보조금 수위도 덩달아 올라갈 것이다. 과당경쟁 논란이 불거지면 통신사들은 대리점과 판매점 탓을 하며 뒤로 숨기 급급할 것이다. 이것이 그동안 통신사들이 보여준 모습이다.
올해는 통신사 CEO들의 발언이 공염불에 그치지 않고 통신시장에 새로운 경쟁환경이 조성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