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조건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 자연 과학과 사회 경험적인 접근을 주로 사용하는 것과는 달리, 분석적이고 비판적이며 사변적인 방법을 폭넓게 사용한다. 철학과 문학, 역사학, 고고학, 언어학, 종교학, 여성학, 미학, 예술, 음악, 신학 등이 있으며, 크게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로 요약된다.'
위키백과에 정의된 '인문학(人文學)'이다. 새삼 고루한 인문학의 교과서적 정의를 다시 들쳐본 이유는 삼성전자의 새로운 인력 채용 방침 때문이다.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개발자를 선발하라." 삼성전자는 인문학 소양을 지닌 소프트웨어(SW) 엔지니어 300여명을 '빠른 시일'안에 확보한다는 계획을 세웠으며, 15일부터 시작되는 그룹 공채에 적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IT산업 종사자라면 이 회장의 이번 방침은 최근 IT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구글롤라(구글-모토롤라 합병)' 등장과 관련이 있음을 짐작한다. 나아가삼성전자(192,200원 ▲6,000 +3.22%)든SK텔레콤(80,600원 ▼300 -0.37%)이든 국내 IT업계가 혼미한 정신을 겨우 수습하며 지난 2년을 달려오게 한 '아이폰(애플) 공습'이 그 원조다.
언론은 삼성전자가 인문학 소양을 새삼 채용기준으로 강조한 이유에 대해 "SW 개발의 원천인 창의력과 상상력이 인문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스티브 잡스 전 애플 CEO가 "애플의 DNA에는 기술뿐만 아니라 인문학이 녹아있다"며 애플 경쟁력의 원천이 인문학에 있음을 강조했다는 점도 들었다.
그런데 인문학적 소양이라면 도대체 어떤 요건을 말할까? 어떤 이들은 "공학도들이 삼성에 입사하려면 이제 '철학의 빈곤'쯤은 읽게 생겼다"고 말한다.
삼성의 생각을 간접적으로 들여다보자. 삼성전자는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개발자를 뽑기 위해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과 KAIST 문화기술대학원 재학생 및 졸업생을 대상으로 취업설명회를 개최했다.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과 KAIST 문화기술대학원은 '하이테크 기술과 인문학을 융합한 교육을 실시하는 국내 대표 교육기관'이다. 공교롭게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은 최근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안철수 원장이 수장을 맡고 있다.
의사에서 개발자로 변신하고, 창업을 통해 CEO가 되고, 다시 교수로 변신한 안 원장은 말 그대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개발자(였)다. 개인별 호감도에 따른 평점은 다르겠지만, 적어도 그의 삶의 궤적이나 최근 젊은이들을 향해 던지는 화두에는 분명 인문학의 기본적 소양이라 할 인간에 대한 사랑 혹은 인간의 행복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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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적인 개발자이자 이제는 교수인 안 원장이 대기업 위주의 국내 산업구조나 시장 불공정에 대해 큰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문화'가 한국이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는 데 발목을 잡고 있으며 삼성 같은 대기업도 예외는 아니라고 지적한다. 정부가 강조하는 '공정사회'나 '상생'에 대해서도 구체성이 결여됐고, 후속조치가 약하다는 비판을 거침없이 한다. 이제는 젊은이들이에게 변화를 직접 이끌어낼 것을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인문학적인 개발자를 찾고 있는 삼성은 과연 '젊은 안철수'들을 채용할 준비가 돼 있는가. 삼성이 젊은 안철수 다수를 채용한다는 것은 안철수 식의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젊은이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준다는 의미다. 더 적극적으로는 안철수식의 문제제기를 '일개 중소벤처기업 CEO 출신'이 제기하는 것으로 폄훼하지 말고, 우리의 문제로 숙고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삼성의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개발자 채용 주문이 10여년전 개발자였던 안 원장이 겪었던 희망과 절망을, 그리고 지금 많은 개발자들의 꿈과 좌절을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