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기업 한국지사의 대표 이사로 있다 보니 해외 출장이 잦은 편이다. 일년 중 절반 정도는 해외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외에 나가면 많은 외국 기업인들과 대화를 나눈다. 그들 대부분은 우리나라 IT 인프라의 우수함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지금은 조금 퇴색한 감이 없지 않지만 우리나라는 분명 아직까지도 ‘IT강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걸 대화에서 느낄 수 있다. 지난 9월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발표한 정보통신기술(ICT) 발전지수에서도 우리나라가 152개국 중 1위를 차지한 걸 보더라도 우리의 IT시장은 아직 건재하다.
사실 우리나라가 IT강국이라는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로 다국적 IT기업들의 눈부신 활약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인텔을 비롯해 마이크로소프트, HP, IBM, 시스코, EMC, 오라클 등의 다국적 IT기업들은 선진기술 및 제품, 서비스를 어느 나라보다도 빨리 국내 시장에 도입함으로써 우리나라 IT 인프라를 굳건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뿐만 아니라 삼성이나 LG와 같은 대기업들과 공동개발 또는 협조를 통해 해외 선진기술을 자연스럽게 국내기업에 이전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국내 IT제품의 해외 수출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를 테면, 국내 업체들과 함께 성장하자는 인텔코리아의 ‘윈-윈’ 전략은 삼성전자, LG전자와 같은 국내 PC업체들이 세계 PC 시장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데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가운데 최근 일부 투기성 해외자본의 국부유출 논란이 국내에서 건전한 비즈니스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 온 대다수의 다국적 기업들까지 오해를 사고 있어 매우 유감스럽다. 그동안 대다수의 다국적 기업들은 GDP(국내총생산)의 증가나 수출 증대, 고용 창출, 기술 이전과 같은 국내 경제 활성화에 기여해 왔을 뿐만 아니라 과거 IMF 때는 물론 최근의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데도 크게 일조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오해의 주된 요지는 한국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전부 해외로 유출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외국계 기업만이 다국적 기업은 아니다. 이른바 MNC(Multi National Corporation)라고 부르는 다국적 기업은 두 개 이상의 국가에서 현지법인을 운영하면서 생산 또는 판매를 하는 기업을 칭하는데, 앞서 예로 든 인텔을 비롯한 외국계 글로벌 기업 외에도 삼성전자나 LG전자, 현대자동차 같은 국내 기업들도 해외 여러 나라에 현지법인을 운영하는 다국적 기업이다. 이들 토종 다국적기업들은 외국에 나가 수익을 벌어들임으로써 국내 경제활성화에 크게 이바지 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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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다국적 기업의 역할에 대한 재인식이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다국적 기업은 기계, 전자, 통신, 반도체 등 여러 분야에서 기술혁신을 가능하게 하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으며 기업 이익의 극대화를 통해 자본을 끌어들여 국가경제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인텔의 프로세서 및 각종 제품들은 한국 시장에서 소비되는 게 판매량의 1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대신 나머지 90% 정도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완제품으로 생산해 부가가치를 높여 수출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즉, 인텔의 제품 판매는 거꾸로 외화를 벌어들여 국부를 증진하는 데도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는 얘기다. 이 같은 다국적 기업의 이익 순환구조는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바라보는 혜안이 필요하다는 걸 말해준다.
셋째, 다국적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다. 고용 창출이나 경제 발전과 같은 기본적인 긍정효과 이외에 사회적 가치에 대한 책임 역시 다국적 기업의 필수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가령, 건강이나 환경에 대한 지원,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 노력, 미래 사회를 위한 교육활동 등과 같은 다국적 기업들의 사회공헌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넘어 공동 가치 창출(CSV: Creating Shared Value)이라는 새로운 명제로 진화하고 있다. 기업의 매출 이익이 큰 만큼 더 많은 사회적 편익을 제공하겠다는 것이 공동 가치 창출의 개념이다. 인텔의 경우 창업 이후 40여년 동안 기업의 발전은 사회발전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인식 하에 다양한 공동 가치 창출 활동을 펼쳐 왔는데 전문적인 사회공헌팀의 주도 아래 각국의 정부기관은 물론 NGO와 같은 비영리단체, 기업 등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 다양한 공동 가치 창출 프로그램들을 운영 중에 있다.
이제는 다국적 기업의 ‘가치(Value)’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 GDP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다국적 기업을 포함한 외국 자본의 역할과 가치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한 것이다. 다시 강조하건대, IT강국 코리아를 만드는 데 크게 일조한 다국적 기업은 우리 경제를 이끌고 가는 주체이기도 하거니와 사회적인 공동의 가치를 창출하는 핵심 공헌자라는 인식 하에 다국적 기업과의 상생을 통해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