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점검/게임, 학교폭력 주범인가]학계·전문가 "게임-폭력 연관관계 입증 안됐다"
최근 게임이 학교 폭력의 주범으로 몰리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일본의 한 교수의 저서를 인용해 "게임이 이용자의 뇌를 손상한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여성가족부는 청소년 수면권 보장을 들어 '강제적 셧다운제'를 밀어붙였다. 교육과학기술부 역시 학교폭력의 원인으로 '게임'을 들었다. 여기에 이명박 대통령 역시 "(게임산업이) 공해적 측면이 있다는 것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며 게임 규제에 나선 정부부처의 편에 섰다. 하지만 정부와 일부 언론의 이같은 주장에는 근거가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근거가 없다'이다.
◇ "게임 유해성 논란 학문적으로 확인된바 없다"
게임이 아이들의 뇌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은 모리 아키오 니혼대학교 교수의 주장이다. 모리 교수는 그의 저서 '게임 뇌(腦)의 공포'에서 인용됐다. 하지만 모리 교수의 저서에 대해 학계에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강영민 동명대 교수는 "이 책은 2003년 '일본 어처구니없는 책 대상(日本トンデモ本大賞)'에 선정됐다"며 "선정 이유는 '연구 대상에 대한 무지', '과학적인 절차를 따르지 않음', '엉터리 논지' 등"이라고 설명했다.
츠모토 타다하루 일본 신경과학학회 회장 역시 "'게임 뇌의 공포'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책이 서점에 널려있어 신경과학의 신뢰성을 훼손한다"며 "정확한 정보를 일반사회에 보내고 싶다"고 비판했다.
게임이 학교폭력의 원인이라는 교과부의 지적도 그 근거가 없다. 위정현 중앙대학교 교수는 "게임과 폭력의 관계는 어떤 것이 원인이고 결과인지 명확하지 않다"며 "폭력적 성향이 있는 청소년들이 게임을 즐겨서 학교 폭력 문제가 생기는지, 게임을 해서 폭력적이 되는지도 확실치 않다"고 말했다. 이어 "학계에서도 게임과 폭력에 대한 논문은 의견들이 엇갈린다"며 "학계도 이렇습니다라는 정의내려 말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스웨덴 미디어 위원회 역시 "폭력적인 게임이 공격적인 행동에 미치는 영향은 주변 다른 요소에 비해 극히 미약하다"고 분석했다.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 심리학과는 지난해 12월 "폭력적인 게임이 게이머를 폭력적으로 만들지 않으며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무해하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막연히 그럴 것이다'라는 억측이 결국 게임을 학교폭력의 원흉으로 둔갑시켰다.
◇ 근거·실효성 없는 '정부규제', 게임업계 위축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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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의 '셧다운제' 또한 탁상행정에서 비롯됐다. 여성가족부는 "청소년의 '수면권'을 보상한다"며 셧다운제를 시행했지만 심야시간 청소년의 게임 이용률 등을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업계에 따르면 셧다운제 시행 이후에도 심야시간대 게임 접속자 수는 과거와 비슷한 수준이다. 실효성이 없는 '규제를 위한 규제'만이 남은 셈이다. 특히 미국과 독일에서는 국내의 학교폭력보다 더욱 심각한 수준의 총기사고가 게임의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하지만 이들 정부와 법원은 이로 인한 게임규제는 이치에 맞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중국 역시 셧다운제를 검토했지만 현실성이 없다는 이유로 폐기됐다. 쿨링오프제 역시 '게임중독' 청소년에 대해 제한적으로 진행된다. 정부의 규제가 심한 중국보다도 강한 수준의 자유권 침해가 국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
정부가 근거도 없고 효과도 미진한 '게임 때리기'에 나서는 동안 게임업계는 날벼락을 맞았다. 교과부의 규제에 대해 언급한 이후 게임업계 상장사 22개의 기업가치는 7500억원이 하락했다. 한국입법학회에 따르면 셧다운제 시행으로 인한 기술적 추리관리 비용만도 314억원이다. 하지만 자정 이후 청소년 게임 접속은 미비하다. 게임업계에서 "매출타격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정부규제는 무엇보다 국내 게임 콘텐츠 수출에 악영향을 미친다. 국내 게임업계 관계자는 "최근 중국 사업자가 한국에서도 정부가 규제하는 유해한 콘텐츠를 공급할 수 없다며 콘텐츠 가격을 깎으려 한 적이 있다"며 "국내 게임이 정부 규제로 인해 해외에서 '유해' 꼬리표를 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인화 이화여대 교수는 "게임이 유대감과 행복감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며 "국내 게임이 유난히 폭력성이 강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폭력성 등의 문제로 제제를 가하면 미국·중국 등 해외 게임만 득세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