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조선 보빙사와 대한민국 과학기술

[기고]조선 보빙사와 대한민국 과학기술

김재현 한국화학연구원 원장
2012.04.16 16:40

1883년 고종이 파견한 보빙사가 미국에 도착했다. 보빙사는 조선에서는 최초로 미국 등 서방 세계에 파견된 외교 사절단이다. 1882년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의 체결로 1883년 주한 공사 푸트(Foote, L. H.)가 조선에 부임하자 고종은 답례 차원과 청나라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1883년 5월 민영익, 홍영식, 서광범 등 개화파 인사들을 대동시킨 친선 사절단을 서방 세계에 파견했다.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미국땅을 밟은 보빙사는 조선 최고의 엘리트들이었다.

이들은 세계 최강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미국의 역동성을 온몸으로 직접 확인했다. 무엇을 느꼈을까. 짐작컨대 떠오르는 강대국 미국의 첨단산업과 선진인프라 앞에서 약소국 조선의 암담한 현실을 떠올리며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조선도 미국처럼 산업을 발전시켜 백성이 잘살고 힘있는 나라가 될 수 있을까. 언제쯤 그것이 가능할까. 수많은 번민으로 일정내내 잠도 쉽게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조선 보빙사들은 129년후 우리나라가 세계 7위의 수출강국으로 성장할 것을 예상했을까. 2011년 12월 지식경제부는 우리나라의 무역규모가 1조달러를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1948년 오징어를 팔던 세계 100위 수출국이 7위로 성장해 자동차와 반도체를 팔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한국의 경제발전모델을 배우기 위해 국내 첨단산업현장에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에서 찾아온 21세기 보빙사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K-POP과 더불어 경제분야에도 이미 한류열풍이 불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들의 열정과 전문성도 국가 발전과 더불어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했다. 지난 3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세계은행 총재 후보로 김 용 다트머스대 총장을 지명한 사실이 전세계 언론에 특종으로 전해졌다. 그 배경에는 김 후보자의 개인적 역량과 함께 급성장한 한국의 국가적 위상도 크게 작용했다는 전문가들의 평가가 이어졌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빛나는 성공스토리의 이면에는 아직은 진정한 선진국이 되지 못한 안타까운 그림자도 분명 존재한다. 청년들은 실업문제로 가슴이 아프고, 베이비붐 세대들은 퇴직전선에서 마음이 무겁다. 또한 소득양극화와 저성장, 고령화와 저출산 등 쉽지 않은 난제들이 우리를 감싸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말 암울했던 시기를 돌아보면 우리 앞에는 수많은 기회가 놓여 있다. 우리 모두가 서로에 대한 따뜻한 배려를 통해 희망을 먼저 생각해야 할 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의 문제만을 부각시키기 보다는 역경을 딛고 일어선 과거를 교훈삼아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동서고금을 통해 국가발전의 해결책으로 가장 먼저 제시된 것이 바로 과학기술이다. 선진국들은 국가운영의 중심에 과학기술이 당당히 자리잡고 있으며 국가비전을 과학적 접근을 통해 수립한다. 냉철한 과학적 분석과 사실에 근거한 정책들이 국민들에게 미래에 대한 꿈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최근 남유럽 국가들이 겪고 있는 경제위기는 다시 한번 세계 각국으로 하여금 과학기술이 발전해야만 잘사는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했다.

매년 4월은 과학의 달이다. 우리나라가 산업화의 첫발을 내딛던 1960∼1970년대에 해외에서 활동하던 수많은 한국인 과학자들이 조국의 경제발전에 초석이 되기 위해 귀국했다. 이들이 흘린 땀은 한강의 기적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 과학자들은 산학연 각 분야에서 묵묵히 100년후 대한민국의 미래가 될 원천기술을 창조하고 있다. 조선 보빙사가 느꼈던 참담한 심정을 사랑하는 후손들이 또다시 겪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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