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준 KAIST 교수 英 옥스퍼드대 박사논문
조선시대 문인의 '상상 속 정원' 직접 경험
유서깊은 英 박물관, 예술성 인정해 구매 요청

길이 10미터에 달하는 한지 두루마리 논문이 영국 박물관에 영구 소장된다.
KAIST(카이스트)는 이진준 문화기술대학원 교수가 영국 옥스퍼드대에 박사 논문으로 제출한 한지 두루마리 논문이 영국 애쉬몰린 박물관에 전시된다고 26일 밝혔다.
애쉬몰린 박물관은 1683년 설립된 세계 최초의 대학 박물관으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등 거장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애쉬몰린 박물관이 생존 작가의 논문을 정식 구입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사례로, 이 교수의 작품은 한국 현대 작가로서 처음으로 애쉬몰린 박물관에 영구 전시된다.
이 교수가 2020년 발표한 '빈정원-어디에나 있는,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의 리미노이드 여행'이라는 이름의 박사 논문은 조선시대 문인이 마음속에 그리던 '상상 속 정원'을 디지털 기술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AI와 데이터가 넘쳐나는 시대에 인간의 감각과 기억을 어떻게 되살릴 수 있을지 탐구한다.
논문을 통해 이 교수는 '데이터 가드닝'이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는 대신 정원을 가꾸듯 천천히 다루고 경험하는 방식이다. 인간의 감각과 사유를 회복하는 형태로 디지털 기술을 다룬다.
무엇보다 논문은 길이 10미터에 달하는 한지 두루마리 형태다. 독자는 논문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논문 위를 걷고, 이를 통해 동아시아 정원의 '거닐기'를 몸으로 경험하게 된다. 논문은 총 9개 한지 두루마리로 제작됐다. 이 중 하나가 애쉬몰린 박물관에 정식 구입돼 영구 소장된다.
이 교수의 논문은 2020년 옥스퍼드대 순수미술 철학박사 심사에서 만장일치로 '수정 없음'(No Corrections) 판정을 받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옥스퍼드대 박사논문은 보들리언 도서관에 학술 자료로 등록되지만, 애쉬몰린 박물관은 논문의 예술·학술적 가치를 인정해 별도 구입하기로 했다.
이 교수는 옥스퍼드대에서 논문을 집필하던 당시 다리 부상으로 휠체어 생활을 하며 '움직임과 멈춤'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고 한다. 그는 "디지털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감각과 경험은 약화할 수 있다"며 "데이터를 넘어 인간이 몸으로 경험하고 사유하는 새로운 감각 체계를 제안하고자 했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