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②] 의정갈등 1년, 봉합은 언제

지난해 2월 20일, 의대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하면서 '의료대란' '의료공백'이 현실화했다. 한때 세계적인 모범사례로 평가받던 'K-의료'는 뿌리부터 흔들리며 취약성을 드러냈다. 공감·연민 대신 비판·비난이 가득한 지난 1년을 보내며 환자와 의사는 모두 '피해자'로 전락했다. 진료 기회를 박탈당한 환자와 과로에 내몰린 의대 교수. 학교와 병원을 떠난 의대생과 전공의는 저마다 울분·상처·좌절·혼란이 가득하다. 미래의 의료를 위한 현실의 갈등은 해법을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시작이다. 머니투데이가 의정갈등 1년을 보낸 의대생·전공의 환자·의대 교수의 속마음을 직접 들었다.
20대 의대생 강백호(가명)씨는 "이렇게 오래 휴학할 줄 몰랐다"며 한숨부터 쉬었다. 지난해 2월 의대증원 발표할 때만 해도 2020년처럼 한두 달 지나 합의 등 정리가 될 줄 알았다. 동기들은 "이번이 기회"라며 과외,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거나 가고 싶던 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반년이 지나고부터는 "말도 안 되는 정책"이라던 당황의 감정이 "장난이 아니구나"라는 체념으로 서서히 변해갔다. 남자 동기 절반은 2학기 복귀도 어려울 것이라며 군입대를 선택했다. 학교와 강의실에서 몸이 멀어지면서 '미래 의사'로서 정체성은 갈수록 희미해져 간다.
강씨는 "정신적, 체력적으로 최상인 시기에 공부 대신 게임을 하거나 일하며 시간을 보내는 게 이제는 '현타'가 온다"면서도 "휴학에 따른 유급과 제적 등 처분이 걱정되지만 의대증원의 파장을 직접 경험할 세대인 만큼 쉽게 수용할 수가 없다. 무엇도 정해지지 않은 올해 1년은 더 불안하고 혼란스럽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대구=뉴시스] 이무열 기자 = 정부의 의과대학 증원에 반발해 휴학 중인 의대생들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계속 휴학하는 방식으로 의대증원 저지 투쟁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7일 대구 한 의과대학 강의실에 의학 서적만 놓여있다. 2025.01.07. lmy@newsis.com /사진=이무열](https://thumb.mt.co.kr/cdn-cgi/image/f=avif/21/2025/02/2025021813501335073_2.jpg)
김찬규(원광대병원 응급의학과 사직전공의)씨의 '의정갈등 백서' 첫 장은 사직서를 쓰기 전날 밤이다. 그야말로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결심을 굳혔지만, 사직서를 내야 하는 순간이 되자 심장이 요동쳤다. 김씨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 나는 혼자였고 두려웠다"고 떠올렸다.
매일 초진을 본 환자의 경과와 입·퇴원 여부를 2시간씩 리뷰했다. 한 달에 22번 근무하고 일주일에 80여 시간을 진료했다. 동료에게 인정받고 환자에게 사랑받던 의사는 사직서를 낸 직후부터 관료와 언론의 협박과 이미지 공격의 대상이 됐다. 김 씨는 "한때는 분노가 전부였던 때도 있었다. 그 뒤에는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이 매일 엄습했다"며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떤 태도를 견지해야 할지 스스로 답을 내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시험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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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수기집을 써 책을 발간했고, 대통령실에 보냈다. 정치 아카데미에 참여하고 전공의 수련과 의무사관 후보생과 관련한 정책제안서를 썼다. 의료공급자(의사)가 아닌 의료소비자(환자)의 권익 보호를 위한 시민단체도 조직했다. 김씨는 "1년 동안 사회와 소통하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유기적 지식인'으로서 역할을 자각했다"며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수 있지만 훗날 나의 '의정갈등 백서'를 볼 때 적어도 부끄럽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사직한 전공의를 대상으로 한 추가 모집이 시작된 10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 전공의 전용 공간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사진=[서울=뉴시스] 황준선 기자](https://thumb.mt.co.kr/cdn-cgi/image/f=avif/21/2025/02/2025021813501335073_3.jpg)
33세 김정문(가명)씨는 "지옥과 천국을 오갔던 한 해"라고 지난 1년을 기억했다. 결혼 3년 만에 지난해 1월 태어난 아들 두섭(가명)이는 신생아 요도하열을 앓았다. 소변이 나오는 요도 구멍 귀두 끝이 아닌 아래쪽에 있는 병이다. 곧바로 수술 예약을 잡았지만, 병원에서는 "전공의가 없이 10월 말이 가장 빠른 때"라는 답이 돌아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11월로 한 번 더 미룰 수 없겠냐며 또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
전공의 사직 기간이 길어질 경우 내년까지도 수술이 밀릴 수 있다는 안내에 김씨는 좌절했다. 관련 카페에 들어가니 수술 지연 통보를 받았다는 글이 10개가 넘었다. '힘없는' 환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약간의 항의, 그리고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다행히 김씨의 아들은 지난해 수술을 마쳤고 현재는 건강하다.
그는 "언제 어디서든 치료받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는데 막상 어려워지니 눈물이 날 만큼 힘들었다"며 "말도 못 하는 1세 아기까지 애꿎은 피해를 받아야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화가 났다. 아이가 또 아프기 전에 빨리 이 사태가 끝나기만 바랄 뿐"이라고 가슴을 쳤다.

중증·응급 환자를 살리는 필수 의료 분야는 의정갈등 이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전공의들은 수련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사직했고, 환자를 지키던 의사마저 병원을 떠나는 실정이다.
전국 188명에 불과한 외상전담 전문의(외상외과) 의사인 허윤정 천안단국대병원 충남권역외상센터 교수는 "후배 의사들에게 외상외과를 하지 말라 말한다"고 했다. 그는 "응급의료센터·권역외상센터와 같은 1차 중증·응급치료 관문도 배후 진료가 뒷받침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며 "외상외과는 원래 전공의가 없으니 괜찮지 않냐고 하는데, 초기 처치한들 뼈를 이어 붙일 정형외과, 얼굴을 재건해줄 성형외과가 없으면 환자가 나빠지는 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만 봐야 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의정갈등 1년에 권역외상센터의 상당수는 의사의 '조용한 사직'으로 제 기능을 잃어간다. 허 교수는 "전국에서 걸려 오는 전원 문의에 온종일 전화만 받기도 시간이 부족할 정도"라고 말했다. 다른 필수의료 분야도 사정은 비슷하다. 수도권 대학병원의 50대 내과 교수는 "당직 서면서 수면을 박탈당하다 보면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올해를 어떻게 보낼지, 고민이 무엇인지 단체 대화방에서조차 아무 말 하지 않는다"며 "이러다 어느 날 갑자기 '진짜 사직서'를 낼 날이 올 것"이라고 씁쓸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