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뽑고 버린다"…태움에 마음도 와르르, 정신과 가는 간호사들

"쉽게 뽑고 버린다"…태움에 마음도 와르르, 정신과 가는 간호사들

박정렬 기자
2025.10.20 15:20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서울 '빅5' 병원의 6년 차 간호사 A씨는 병가 복직 후 지난해 중순에 암센터에서 PA(진료지원) 간호사 근무를 시작했다. 당시 병원은 의정 갈등으로 인해 비상경영체제 상태였다. 이전에도 소아·성인 병동에서 근무하며 PA 간호사에 준하는 일을 했던 A씨는 처음엔 수월하게 업무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PA간호사의 업무는 일반 간호사와는 전혀 달랐다. 집단 사직한 전공의를 대신해 처방을 내고, 상태를 체크하며 투약 용량과 치료 방향을 조절하는 등 마치 의사처럼 일했다. 하지만 갑자기 늘어난 PA간호사는 '배움의 기회'가 거의 없었다. 선배 간호사에게 묻는 게 최선이었지만 가장 오래 일한 PA간호사도 경력이 2년에 불과했다. 일을 가르쳐주는 사수(선배)는 PA간호사 업무를 맡은 지 불과 6개월 차였다.

그런 와중에도 A씨의 담당 환자는 물밀듯 쏟아졌다. 항생제를 포함해 거의 모든 약을 새로 접하고, 처방 시스템도 익숙하지 않은 채로 '신속한 처치'를 강요당했다. 실수할 때마다 개인·팀 채팅으로 선배 간호사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A씨는 "꼭 알아야 할 것도 무서워서 물어보지 못하고 다른 병동 선배에게 질문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A씨는 상급 간호사에게 고충을 토로하는 등 개선을 요구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단체 간담회에서 선배 간호사의 공개적인 비난을 받았고 그의 마음은 와르르 무너졌다. 무급휴가를 신청한 후 정신과 병원을 찾은 그는 '공황발작'을 진단받았다. A씨는 선배 간호사의 모욕적인 발언, 근무 시간 이후 업무 지시 등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지난 1월 관할 노동청에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진정을 넣었다.

A씨와 함께 일한 PA간호사 B씨는 "교육의 질이 현저히 떨어지고 시간도 부족하다"며 "이런 상황에 많게는 하루 10명의 입원 환자와 30~40명의 재원 환자를 봐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은 불공정한 처사"라고 안타까워했다.

[서울=뉴시스] 이형훈 보건복지부 2차관이 8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를 방문해 신경림 간호협회 회장과 면담하고 있다. (사진=대한간호협회 제공) 2025.07.0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류현주
[서울=뉴시스] 이형훈 보건복지부 2차관이 8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를 방문해 신경림 간호협회 회장과 면담하고 있다. (사진=대한간호협회 제공) 2025.07.0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류현주

20일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전국 의료기관 간호사 78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간호사 인권침해 실태조사' 결과 50.8%가 최근 1년 내 인권침해를 당했다고 응답했다. 의정 갈등 상황에 일선 환자를 지켰지만 절반 이상의 간호사가 A씨처럼 폭언과 괴롭힘 등에 노출된 것이다.

가장 흔한 피해 유형은 폭언(81%)과 직장 내 괴롭힘·갑질(69.3%)이었다. 가해자는 선임 간호사(53.3%), 의사(52.8%), 환자 및 보호자(43%) 순이다. 2019년 대형병원 간호사 자살로 소위 '태움'이라 불리는 직장 내 갑질 문화와 선후배간 수직적 관계가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으나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간호협회가 인권침해의 근본적인 이유를 '인력 부족'으로 지목한 가운데 일각에서는 병원이 간호사 처우를 개선할 유인책이 부족하다는 점도 원인으로 지목한다. 의사처럼 증원이 가로막히지 않아 매년 1000명씩 늘어나는 상황에 '티슈 노동자'라는 간호사들의 자조는 점차 강해지고 있다. 병원에서 필요하면 뽑고, 쉽게 버려지는 휴지(티슈)와 같다고 해서 붙은 '슬픈 별칭'이다.

실제 간호대 입학정원은 2만4000여명이지만 배출 간호사 중 1만4000여명이 1년 이내에 간호사를 포기한다. 병원간호사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사직자의 80%가 경력 5년 미만의 젊은 간호사다. PA간호사 등 업무량의 증가·변화가 동시에 작용하며 고년차 간호사의 '탈 임상' 위기감마저 커지고 있다. 간호협회는 "인력 충원, 처벌 기준 강화, 조직문화 개선을 포함한 종합대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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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렬 기자

머니투데이에서 의학 제약 바이오 분야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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