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질환 '신속 급여' 약속했지만…1년 넘게 "평가 중" 허탈한 환자

희귀질환 '신속 급여' 약속했지만…1년 넘게 "평가 중" 허탈한 환자

박정렬 기자
2026.02.09 16:01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4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 연세암병원 중입자치료센터에서 열린 희귀질환 환우·가족 현장소통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서울=뉴스1 이재명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4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 연세암병원 중입자치료센터에서 열린 희귀질환 환우·가족 현장소통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서울=뉴스1 이재명 기자

정부가 희귀·중중·난치질환 치료제에 대한 보장성 강화를 강조하지만 환자가 체감하는 변화는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속한 급여 적용을 목적으로 이미 시행되고 있는 제도조차 추진이 지지부진해 환자·보호자가 애를 태우고 있다.

9일 보건복지부와 업계에 따르면 중증∙희귀난치질환 치료제의 신속 도입을 목표로 한 '허가-평가-협상(허평협) 병행 시범사업'은 2024년 12월 2차로 3개 약제가 선정돼 관련 절차가 진행 중이다.

이 시범사업은 품목 허가, 급여 적정성 평가, 약가 협상 절차를 병행해 신약의 건강보험 등재 기간을 기존 약 330일에서 150일로 단축하는 것이 목표다. 국정과제 중 하나인 '국민 의료비 부담 완화'를 이행하기 위해 지난달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된 '희귀·중증난치질환 지원 강화방안'(100일 이내 급여 등재)과 유사하다.

그러나 허평협 병행 시범사업은 당초 기대한 기간 단축 효과를 충분히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앞서 2023년 시작한 1차 시범사업도 종료까지 2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는데, 2차에 포함된 소타터셉트, 안발셀, 펜플루라민 역시 2024년 12월 선정된 이후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단 하나도 건보 급여에 등재되지 못했다.

정진향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사무총장은 "희귀·중증·난치질환의 치료 접근성을 높이는 정부 제도는 의미가 크며 환영할 일이지만 중요한 것은 환자들이 그 혜택을 실제 체감하는 것"이라 말했다. 그는 희귀·중증 질환의 경우 특히 치료 시기가 남은 삶의 기간과 질 모두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며 "환자에게는 '좋은 제도'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좋은 치료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희귀 중증난치질환 지원 강화방안 관련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사진=(세종=뉴스1) 김기남 기자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희귀 중증난치질환 지원 강화방안 관련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사진=(세종=뉴스1) 김기남 기자

국내에서 혁신 신약의 등재가 지연되는 주요 요인으로 경직된 ICER(점증적 비용-효과비) 임계값(급여 허가 상한액)이 반복적으로 거론된다. ICER는 신약이 기존 약제 대비 얼마나 더 효과적인지, 효과를 얻는 데 추가로 드는 비용이 적절한지를 평가하는 지표다.

희귀·중증·난치질환 치료제는 이런 '비용 효과성 평가'를 넘어서는 게 까다롭다. 애초 환자 수가 적어 개발과 임상에 드는 비용이 막대한데 ICER상 '비교 약제'는 과거에 도입된 기존 약이라 평가와 협상에 난항을 겪기에 십상이다. 실제 허평협 2차 시범사업 약제 중 가장 먼저 논의가 시작된 폐동맥 고혈압 치료제 소타터셉트는 지난해 7월 국내 허가를 받았지만 약 200일이 지난 지금까지 급여 적정성 평가 단계에 머물러있다.

혁신 신약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정부는 ICER 임계값을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추세다. 지난해 11월에는 약가 제도 개편안을 공개하며 혁신 신약에 대해 ICER 임계값을 상향 적용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도 질병의 중증도, 사회적 가치 등을 고려해 혁신 신약은 기준보다 높은 ICER 임계값을 허용한다.

다만, 건보재정이 제한된 만큼 무조건적인 신약 급여화는 정부 입장에서 부담이 크다. ICER 임계값 탄력 적용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이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등 환자·시민단체는 서울 종로구 경실련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초고가 신약 상당수가 기대만큼의 치료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며 희귀질환 신속 등재 정책의 재고를 요청하기도 했다.

남은경 경실련 사회정책팀장은 "신약 접근성을 강화하는 정책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절박한 환자에게 효과가 있는지 (평가하고) 사용되는 재정이 면밀하게 운영되는지 봐야 한다는 것"이라며 △신약 효과 평가 결과 전면 공개 △엄격한 사후 평가 체계 구축 △고가 신약에 대한 재정 관리 방안 제시 △사회적 논의 기구 구성 등을 정부에 요청했다. 업계 관계자는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한 2차 시범사업 약제에 ICER 임계값 상향 적용을 우선 검토하는 등 구체적인 실행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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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렬 기자

머니투데이에서 의학 제약 바이오 분야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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