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심교의 내몸읽기]

'걸리면 죽는다'는 공포의 암으로 악명 높은 게 췌장암이다. 과거보다 치료 성적은 크게 좋아졌지만, 아직도 발생 규모에 비해 사망 부담이 큰 '고위험 암'으로 분류된다. 조기 발견이 어려운 특성 탓에 환자 대부분이 이미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진행된 상태에서 처음 진단받는다. 치료 성적도 제한적이다.
2022년 기준 전 세계적으로 췌장암 신규 환자는 약 51만명, 사망자는 약 46만 명으로 보고됐다. 전체 암 발생의 약 2.6%를 차지하는데도 췌장암의 사망률은 전체 암의 4.7%에 이를 정도로 치명적이다.
췌장암 치료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조기 발견'을 놓치기 쉬워서다. 췌장은 인체 깊숙한 곳에 있다. 서울성모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백규현 교수는 "췌장은 위 뒤쪽, 척추 바로 앞인 '후복강(복막 뒤 공간)'이라는 복부의 가장 깊숙한 곳에 숨어있다"며 "이런 위치적 특성 때문에 초음파나 일반 검사로는 병변을 조기에 발견하기가 매우 까다롭다"고 설명했다.
췌장암은 발생 초기에 뚜렷한 증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아 '침묵의 암'으로 불린다. 여기에 췌장암 종양 자체가 매우 공격적이어서 성장·전이가 빠르다. 인제대 일산백병원 소화기내과 이태승 교수는 "췌장암은 초기 단계에서 특징적인 증상이 없어 단순 소화불량이나 피로감으로 오인되는 경우가 많다"며 "증상이 비특이적이어서 진단이 늦어지는 사례가 적잖다"고 설명했다.

혹여 증상이 나타나더라도 약간의 소화불량, 명치 부위의 둔한 불편감, 원인 모를 체중 감소와 식욕 저하 등 일상적인 위장장애와 구분이 어려운 흔한 증상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환자 스스로 단순한 위염이나 스트레스성 소화불량으로 가볍게 여기고 방치하다가 병을 키우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로 췌장암 환자 중 수술적 절제가 가능할 때 발견되는 경우는 15~20%에 불과하다. 반면 80% 이상은 진단 당시 이미 췌장암세포가 주요 혈관을 침범했거나 다른 장기로 퍼진(원격 전이) 상태로, 수술이 어려운 상황에서 발견된다. 운 좋게 수술받은 환자여도 이들 중 70~80%에서 췌장암이 재발하는 등 예후가 좋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 국가검진 항목엔 위암·대장암 등과 달리,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췌장암 검사 항목이 따로 없다. 검사 효율성, 비용 대비 효과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아서다.
다만 일부 고위험군에서는 조기 발견을 위한 정기적인 감시 전략을 짤 필요가 있다. 그 예로 '가족성 췌장암 고위험군'이 여기에 해당한다. ▲부모·형제자매·자녀 등 1차 친족을 포함해 동일 가계 내 췌장암 환자가 3명 이상인 사람 ▲췌장암 환자 2명이 서로 1차 친족 관계이면서 그중 1명이 본인의 1차 친족인 사람은 일반인보다 췌장암 발생 위험도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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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적 요인도 중요한 기준이다. ▲STK11(Peutz-Jeghers syndrome) ▲CDKN2A(FAMMM syndrome) ▲BRCA1·BRCA2 ▲PALB2 ▲ATM ▲Lynch syndrome 관련 유전자 ▲PRSS1 유전성 췌장염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STK11, CDKN2A, PRSS1이 있다면 비교적 젊은 연령부터 감시 전략을 고려할 수 있다.
'췌장 낭성' 병변 역시 주의해 관리해야 한다. IPMN(췌관내 유두상 점액종양)과 MCN(점액성 낭성 종양)은 병변 특성에 따라 정기적인 영상 추적검사나 추가 평가가 권고된다. 이 교수는 "가족력, 유전적 위험요인이 있는 경우 전문의와 상담해 개인별 췌장암 감시 전략을 수립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췌장암 고위험군이 아니더라도 혈당 조절 능력이 급격하게 변했다면 췌장암 검사를 받아야 한다. 특히 ▲50세 이후 당뇨병이 새롭게 발생한 사람 ▲기존에 앓아온 당뇨병이 갑작스럽게 조절되지 않는 경우 췌장암 유무를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할 신호로 꼽힌다. 백 교수는 "췌장은 혈당을 조절하는 인슐린을 생성하고 소화 효소를 분비한다"며 "당뇨병은 췌장암의 원인이자 결과일 수 있는 매우 밀접한 질환으로, 당뇨병 환자가 증가한 게 췌장암 증가와 맞물려 있다"고 말했다.
이런 증상 말고도 ▲이유 없는 체중 감소 ▲황달 ▲윗배 또는 등이 지속해서 아픈 경우 ▲식욕 저하 ▲설명되지 않는 소화불량 등이 반복되거나 이어지면 전문 진료가 권고된다.

췌장암의 주요 위험인자는 ▲흡연 ▲비만 ▲당뇨병 ▲만성 췌장염 등이다. 흡연자는 비흡연자보다 췌장암 발생 위험이 2~3배 높다. 술은 만성췌장염을 유발할 수 있는데, 만성췌장염은 결국 췌장암 발생 위험을 높이는 원인이 된다.
췌장은 해부학적으로 깊은 위치에 있고 장내 공기 등의 영향도 받아 일반 복부 초음파만으로는 전체 평가에 한계가 있다. 이에 따라 필요 시 췌장 프로토콜 조영증강 CT(컴퓨터단층촬영), MRI(자기공명영상) 같은 정밀 영상검사가 활용된다.
특히 2주 이상 지속되는 소화불량, 이유 없는 체중 감소, 등까지 뻗치는 복통, 갑자기 악화된 당뇨병 등은 췌장암을 의심해 볼 수 있는 주요 증상이므로 반드시 주의가 필요하다. 눈이나 피부가 노랗게 변하는 황달이 동반된 경우에는 이미 암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조금도 지체하지 말고 신속한 진료를 받아야 한다.
이 교수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췌장암 검사를 시행하기보다는 고위험군을 선별하고 위험 신호를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며 "금주, 금연, 적정 체중 유지 등 생활습관 관리도 췌장암 예방에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