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리 루쉬코프(74)는 러시아에선 대통령이나 총리만큼 유명하다. 그는 지난달까지 무려 18년간 모스크바 시장으로 재임하며 러시아의 심장부를 쥐락펴락해온 실력자이다.
나는 새도 떨어뜨릴 것 같던 그가 지난달 굴욕을 당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그를 전격 해임한 것이다. 하루아침에 쫓겨난 루쉬코프는 시청 직원들에게 "짐이라도 챙기자"고 사정해 겨우 자신의 집무실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해임 사유는 비리 문제이다. 국영 러시아 언론들에 따르면 루쉬코프의 부인 옐레나 바투리나는 대형 건설회사를 운영하며 모스크바의 주요 건설 프로젝트를 독식해왔다. 모스크바의 돈 되는 사업은 부부가 다 해먹었다는 원성이 따를 정도이다. 18년 장기집권에 필연적인 부패의 전형이다.
하지만 이면을 들춰보면 추악한 크렘린의 '파워 폴리틱'이 존재한다고 서방언론들은 지적한다. 2012년 예정된 대통령 선거에는 실세이자 이전 대통령인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와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출마가 유력시 된다. 둘다 ‘회전문’이자 장기집권 행보이다. 여기에 수도 모스크바의 시장마저 그대로 있다면 러시아가 비민주적이라는 서방세계의 비난이 고조되기 십상이다.
물론 인기 있는 시장을 무리하게 해임할 정도로 러시아 권부는 무모하지 않았다. 문제는 루쉬코프의 인기가 현저히 떨어졌다는 것이다.

루쉬코프 재임 기간 모스크바는 급격히 팽창했지만 인프라가 뒷받침되지 않았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모스크바의 교통난은 세계 20대 도시 가운데 최악이고 모스크바에서 한 번 교통체증에 걸렸다 하면 평균 2시간30분을 도로에 갇힌다는 조사도 있다. 해임 직후 여론조사에서 루쉬코프 옹호 응답자는 13%에 불과했다.
메드베데프는 지난 16일 후임 시장에 푸틴의 '오른팔'인 소뱌닌 총리실 행정실장을 지명했다. 소뱌닌은 의회 인준을 받으면 당장 교통난 해결에 나설 태세다.
메드베데프-푸틴 콤비는 대선 걸림돌을 제거하고 정부 지지율도 끌어올리게 됐다. 반면 18년 권좌에서 물러난 루쉬코프는 권력자도 무섭지만 그 권력을 가능하게 하는 국민이 더 무섭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