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징 리더]
전세계 헤지펀드 업계의 양대 거물은 조지 소로스와 존 폴슨이다. 올해 81세인 소로스는 이미 오랫동안 헤지펀드 업계의 대부로 자리해온 반면 올해 56세인 폴슨은 2007~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급부상하며 영향력을 급속히 확대했다.
◆소로스와 폴슨 모두 유대인

폴슨은 소로스의 아들 혹은 조카뻘 되는 한참 후배지만 3가지 점에서 소로스를 꼭 빼닮았다. 첫째, 둘 다 유대인이다. 소로스는 1930년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의 탄압을 피해 간신히 영국으로 탈출했다.
폴슨은 1955년 뉴욕 퀸스에서 태어난 순수 뉴욕 토박이지만 유대인의 연합 예배당(시나고그) 산하 교육기관인 화이트스톤 히브리 센터에서 공부했을 만큼 정통 유대인 혈통이다. 폴슨은 또 외할아버지 아더 보클란이 월스트리트의 은행가였고 아버지 알프레드 폴슨은 홍보대행사 루더 핀의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일종의 뉴욕 금융가 출신이기도 하다.
둘째는 소로스와 폴슨 모두 매크로(거시) 플레이어란 점이다. 주식 투자의 귀재, 오바마의 현인이라 불리는 워런 버핏은 앞으로 경제가 어떻게 될지, 환율이나 유가, 금값이 어떻게 될지 등에 대해선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개별 기업의 재무제표를 철저히 분석한 뒤 주가가 쌀 때 매수해 장기 보유하는 방식으로 부를 쌓아왔다. 숲보다는 나무 하나하나를 보고 좋은 나무를 골라내는 바텀-업(Bottom-Up) 분석이 장기다. 장기적으로 경제는 발전한다고 믿고 좋은 종목을 골라내는데만 주력하는 마이크로(미시) 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의 큰 그림을 보고 크게 베팅한다

반면 소로스와 폴슨은 경제의 큰 그림, 시장의 큰 방향을 보고 베팅하는 방식으로 돈을 번다. 성공하면 크게 벌지만 실패하면 손해볼 위험도 상당히 큰 방식이다.
소로스가 큰 돈을 벌며 전세계적으로 이름(혹은 악명)을 날린 사건은 1992년 영국 정부를 대상으로 한 파운드화 집중 투매였다. 소로스는 파운드화 매도로 일주일만에 10억달러가 넘는 돈을 챙겼다. 1998년에는 달러 강세에 베팅해 아시아 통화 하락을 부추겼다는 이유로 아시아 외환위기의 주범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폴슨이 헤지펀드 업계의 거물로 급부상한 계기는 2007~2008년 미국 주택시장 붕괴였다. 그는 2006년부터 주택시장이 버블이라고 판단하고 주택시장이 하락하면 돈을 벌 수 있는 상품, 크레디트 디폴트 스와프(CDS)에 투자했다. CDS는 채권이나 부채담보부증권(CDO)에서 신용위험만 따로 떼낸 신용 파생상품으로 채권이나 CDO의 부도 위험을 헤지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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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슨은 주택시장 몰락에 베팅한 것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단 2년 남짓만에 200억달러를 벌어들였다.
◆파생상품 잘 몰라..시장 방향만 보고 투자
하지만 폴슨은 CDO나 CDS 같은 파생상품에는 거의 문외한이다. 그가 뉴욕대 경영대학 출신이고 하버드대 MBA이긴 하지만 금융공학은 잘 모른다. 당시 그의 유일한 직원으로 역시 하버드대 MBA인 파올로 펠레그리니도 폴슨보다는 좀 나았지만 파생상품을 잘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파생상품, 특히 신용 파생상품을 잘 모르던 두 사람이 CDS에 투자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돈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폴슨은 2005년부터 미국 경제가 불안하다고 봤다. 특히 주택시장은 이미 버블 단계에 들어섰다고 판단했다.
이 때문에 폴슨은 주가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고 S&P500 풋옵션을 샀다. 하지만 S&P500 풋옵션은 기관 투자가들이 헤지 수단으로 일반적으로 매수하는 상품이다. 수요가 많은 만큼 가격이 너무 비쌌다.
이런 상황에서 눈에 띈 것이 CDS였다. 당시 미국 주택시장은 상승세를 계속하고 있어 CDO 가격은 고공행진을 하고 있던 반면 CDS 가격은 '껌값'이었다.
폴슨은 주택시장의 버블이 결국엔 터질 것이라고 확신하고 크게 베팅하고 싶어 기관 투자가를 찾아 다니며 자금을 유치했지만 1억4700만달러밖에 모으지 못했다. 당시 다른 헤지펀드들은 수십억달러를 끌어들이고 있을 때였다. 그만큼 월스트리트 큰손들은 주택시장이 붕괴할 것이라는 폴슨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IT 버블 때는 기술주 공매도로 돈 벌어

폴슨이 헤지펀드 회사를 세운 것은 1994년이었다. 초기 투자자금 200만달러(약 20억원)는 모두 자신의 돈이었다. 큰 돈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가 컨설팅회사인 보스턴 컨설팅그룹(BCG), 투자회사인 오디세이 파트너스,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 M&A회사인 그러스 파트너스 등 월스트리트에서 20년 가까이 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200만달러 정도의 종자돈은 충분히 모을 수 있었다.
폴슨은 자기 돈인 만큼 헤지펀드 자금을 신중하게 투자했다. 하지만 버핏식 투자 방식과는 정반대였다. 폴슨이 처음으로 꽤 짭짤한 수익을 거둔 것은 1999년 기술주 버블 때였다. 당시 그는 기술주를 대거 공매도해 상당한 돈을 벌었고 이를 계기로 월스트리트 기관 투자가들 사이에 어느 정도 이름을 알렸다. 그의 헤지펀드는 1999년에서 2003년 사이에 6억달러 규모로 급성장했다.
◆작년에는 금에 베팅해 45% 수익 얻어
폴슨은 지난해에도 매크로 베팅으로 큰 돈을 벌었다. 개인적으로만 단 1년만에 50억달러를 벌었으니 소로스를 압도하는 엄청난 규모이다.(지난해 하반기에 폴슨&Co는 58억달러, 소로스의 퀀텀펀드는 30억달러의 수익을 거뒀다.) 이 가운데 10억달러는 그가 고객들에게 50억달러 이상의 수익을 안겨준 대가로 받은 수수료이다.
나머지 40억달러는 개인 돈 100억달러를 자신이 운용하는 헤지펀드에 투자해 벌어들인 돈이다. 그렇다면 그의 헤지펀드가 지난해 무려 40%의 수익을 냈다는 의미일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폴슨&Co.의 대표 펀드인 어드밴티지 플러스의 지난해 수익률은 씨티그룹 등에 투자한 덕분에 간신히 17%를 나타냈을 뿐이다.
그렇다면 폴슨의 수익률 40%는 어디에 기인하는 것일까. 바로 금이다. 폴슨은 1달러를 주식형 헤지펀드에 투자하면 이를 담보로 20센트를 빌려 금 선물과 금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해 1달러의 금 롱 포지션을 구축했다.
폴스은 자신의 돈만 이렇게 투자한 것이 아니라 금 헤지펀드를 만들어 고객의 돈도 이런 방식으로 투자했다. 이 결과 지난해 금이 30% 오르는 동안 주식형 헤지펀드와 금 헤지펀드를 결합한 폴슨식 투자의 수익률은 45%에 달했다. 아울러 폴슨&Co의 운용자산 360억달러 가운데 150억달러가 폴슨 개인 돈을 비롯한 직원들의 투자자금이다.
◆투기꾼이라 손가락질..하지만 기부천사
소로스와 폴슨의 세번째 공통점은 투기꾼이라는 비난을 받지만 기부 활동에도 적극적이라는 점이다. 소로스는 파운드화 투매로 '피도 눈물도 없는 환 투기꾼' '자본주의의 악마'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지난해에는 3억3200만달러를 자신이 설립한 오픈 소사이어티에 기부해 ‘기부왕’에 올랐다. 소로스는 오픈 소사이어티를 통해 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와 마리화나 합법화 운동 등 각종 사회활동에 기부하고 있다.
폴슨은 2007~2008년 큰 돈을 벌게 해준 CDS 투자와 관련해 부도덕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골드만삭스가 주택담보대출 증권을 기초자산으로 CDO를 만들어 팔 때 기초자산이 되는 상품을 선정하는 역할을 했으면서 자신은 정작 CDS에 투자했기 때문이다. CDO는 주택시장이 건전할 것이라는 믿음에, CDS는 주택시장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에 베팅하는 상품이다. 이 때문에 양심도 없는 냉혈한이라는 비난을 산 것.
이와 관련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골드만삭스에 거액의 벌금을 부과했으나 폴슨은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고 넘어갔다. 골드만삭스는 고객들에게 폴슨이 CDO의 기초자산을 골랐으며 폴슨 자신은 주택시장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점을 알릴 의무가 있지만 헤지펀드는 사모펀드이기 때문에 폴슨으로선 특별히 법을 어긴 것이 없기 때문이다.
◆베어스턴스에 결정타를 가한 것도 폴슨
베어스턴스는 2008년 금융위기 와중에 월스트리트 주요 헤지펀드 매니저들을 초청해 점심을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베어스턴스가 자금난에 빠졌다는 루머가 횡행하고 있어 큰 손 고객들의 동요를 막아보자는 의도였다.
당시엔 폴슨도 CDS 투자가 성공하면서 월스트리트의 거물로 초청을 받았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점심식사가 절반쯤 진행됐을 때 폴슨이 갑자기 일어섰다. 그는 베어스턴스 임원들을 향해 "당신들은 당신 회사의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있소"라고 말한 뒤 베어스턴스의 문제를 조목조목 나열하기 시작했다.
점심식사가 끝났을 때 함께 자리를 했던 헤지펀드 매니저들은 "베어스턴스가 모르는 문제를 폴슨이 알고 있다"고 평가하며 사무실로 돌아가자 마자 베어스턴스에서 돈을 빼냈다. 베어스턴스는 결과적으로 위기를 모면하고자 마련했던 식사자리에서 폴슨의 공격으로 몰락을 재촉한 셈이 됐다.
◆조금씩 시작한 기부활동..소로스 형님만큼 커질까
폴슨은 소로스처럼 돈 버는데는 도덕이니 윤리니 생각하지 않고 돈 되는 곳에만 달려가지만 쓸 때는 쓴다. 폴슨은 금융회사의 책임 있는 대출 관행을 촉구하는 비영리 단체인 ‘책임 있는 대출을 위한 센터’에 1500만달러를 기부했고 2009년에는 자신의 모교인 뉴욕대학 경영대학(스턴 비스니스 스쿨)에 2000만달러를 쾌척했다.
지난해에는 에콰도르에 남미 최대의 어린이 병원을 건립하는데 1500만달러를 냈다. 올들어서는 영국 런던 정치경제대학원(LSE)에 250만 파운드를 기부했다. 이외에 폴슨은 2000년부터 정치자금으로 14만달러를 썼는데 45%를 공화당원에게, 16%를 민주당원에게, 36%는 특별한 이해관계에 따라 기부했다.
폴슨의 기부액은 소로스에 비하면 아직 미미하다. 그가 소로스처럼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회적 책임을 더 강하게 느끼며 더 적극적으로 기부 활동에 참여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폴슨은 지난해 재산이 120억달러로 포브스가 선정한 전세계 46위의 부자에 올랐으며 올해는 40위 안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내에서는 20위의 부자다.
출저:위키피디아, 책 'The Greatest Trade Ever', 월스트리트 저널, 포브스, 더스트리트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