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년1월 걸프전뒤에는 유가하락, 가다피 대응에 따라 달라질 듯
서방 연합군의 군사개입으로 리비아 사태가 새국면을 맞았다. 글로벌 증시에 대한 영향은 유가가 쥐고 있다. 일본사태로 투심이 가라앉은 상황에서 유가상승이 줄 증시 파괴력은 커져있다고 봐야한다. 가다피의 행동과 국제사회의 추가 대응 등 변수 어느 것 하나 예단은 힘들다.
이미 리비아 원유수출은 한달째 중단된 상태다. 일 160만배럴이나 되는 원유가 시장에서 없어진 것이다. 뱅크오브어메리카 메릴린치가 모델로 추정한 바에 따르면 원유수급량이 하루 60만배럴 변동하면 유가는 15달러 움직인다. 리비아 사태전에 비해 국제유가가 20달러가량 올랐으므로 대략 리비아 원유공급 감소분중 대략 하루 80만배럴은 반영돼 있다고 할 수 있다.
나머지 80만배럴 영향은 산유국의 증산이나 전략 비축유 방출기대 등에 의해 반영이 억제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속엔 리비아의 원유시장 복귀에 대한 희망도 숨어있다. 국제사회 개입 후 가다피가 유전시설을 파괴하는 등 자해행위를 하거나 유전시설에서 교전이 일어나는 것이 유가와 증시에 최악이다.
시장은 가다피 행동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유엔안보리 결의가 있었던 17일 WTI유가는 3.4% 올랐다가 18일 0.6% 내렸다. 유엔 안보리 결의를 코앞에 두고도 가다피가 항전 태세를 보이다 하루뒤 휴전 제스처를 취한데 따른 것이다.
리비아 석유시설이 온전하게 보존되느냐 아니냐에 대한 관심으로 해석된다. 가다피가 결사항전을 지속하고 국제사회의 응징이 거칠어지면 유가가 출렁일 가능성이 적지않다.
국제사회가 가다피 축출의지를 분명히 하며 91년 1월~2월 걸프전 때처럼 조기에 승세를 잡아버리는 것이 시장에 가장 좋은 시나리오다. 그러나 그때 처럼 일사천리로 진행되기를 낙관하기 어려운 요인이 적지않다.
91년 1월17일에 시작해 같은해 2월28일 종료된 걸프전 때는 국제사회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를 침략자로 규정하고 후세인에 대한 응징을 명백히 했다. 그만큼 개입명분도 컸다는 것이다. 대대적 공습으로 이라크군을 무력화한 후 91년 2월24일 지상군까지 대대적으로 투입해 약 100시간만에 속전속결로 끝냈다.
그러나 이번 국제사회의 리비아 군사 개입은 걸프전과 달리 행동반경에 제약이 많다. 우선 유엔결의에서 서방국은 명시적으로 지상군개입이 배제됐다. 안보리 결의에서 기권한 중국과 러시아는 군사개입에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개입명분도 명시적 가다피 축출이 아닌 민간인 보호다. 가다피가 유화적으로 나오며 국제사회의 개입반대여론에 기대는 심리전으로 나오면 어정쩡한 대치상황이 오래갈 수 있다는 뜻이다. 이 경우 유가는 꺼지지도 않고 추가로 크게 오르지도 않는 불안한 행보를 지속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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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프전을 전후하여 유가가 급등했다고 하지만 정확히는 90년8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유발된 것이다. 이라크 쿠웨이트 침공 전 20달러를 밑돌던 WTI유가는 90년10월말 40달러수준으로 130% 가량 올랐다.
이후 서방세계가 이라크를 응징할 것이란 기대가 나오며 국제유가는 하락을 걷기 시작했다. 91년 1월17일 다국적군의 공습이 시작되기 직전엔 WTI는 배럴당 25달러선에서 30달러 이상 잠깐 올랐으나 막상 공습이 시작되며 하락했다. 서방국 승리가 확정적인 된 후부터는 거의 이라크 침공 전수준을 회복했다.
뉴욕 다우지수 흐름은 유가가 지배했다. 이라크 쿠웨이트 침공전 3000수준이던 다우지수는 유가급등과 함께 90년10월 2400수준까지 내려갔다. 91년1월 다국적군 이라크 공격 직전엔 잠깐 하락했으나 공습과 동시에 올랐다. 이라크의 항복을 즈음해 급상승, 3000수준으로 되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