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문만 무성했던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핵연료봉 멜트다운(노심용융)이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된 사실이 드러났다. 평소 같으면 냉각수에 잠긴 채 안전하게 관리됐을 연료봉이 지진과 쓰나미 사태 이후 원자로 냉각기능이 마비된 탓에 끝내 녹아내린 것이다.
연료봉을 식혀 원전을 살리려고 뿌려댄 냉각수는 방사능이 녹아든 오염수로 변해 배관 균열을 타고 원전 지하에 고였다. 터빈실 등 부속 건물이 아니라 원자로 건물 지하에서 오염수가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호기 지하에 고인 물은 수심이 약 4.2미터, 그 양은 3000여톤으로 추정된다.
지진과 쓰나미, 뒤이은 원자로 건물의 폭발사고 등으로 원전 건물이 심각하게 손상된 만큼 오염수가 지하로 스며들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다른 원전에서도 멜트다운이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되고 있다. 15일 도쿄전력은 2호기와 3호기의 원자로도 "최악의 경우 1호기와 마찬가지로 상정된다"고 인정했다. 오염수뿐 아니라 연료봉의 고농도 핵물질이 지표를 뚫고 누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냉전기 중국이 핵개발을 추진하자 서방은 공포에 휩싸였다. 급기야 중국에서 핵물질이 지표로 누출되면 지구를 관통, 반대편 유럽의 토양과 지하수를 오염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 확산됐다. 한때 서방을 떨게 만든 핵재앙론이자 몽골의 유럽침입으로 형성된 황화론(옐로 페릴)의 20세기 버전이다. 원자력 기술이 발달하고 중국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게 된 지금은 터무니없는 우스개 소리 쯤으로 넘길 수 있지만 당시엔 심각한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큼 파괴력이 컸다.
21세기판 황화론의 주인공은 일본일까. 후쿠시마 원전사태는 이미 체르노빌급을 능가하는 최악의 핵 참사로 기록됐다. 치명적 수준의 고농도 오염수와 핵연료 플루토늄마저 원전 주변에서 검출됐지만 사태 수습은 너무 더디다. 오염수 누출이 확인되자 원자로를 통째로 수장시키는 냉각법은 폐기됐고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자면 시간이 더 필요할 전망이다. 이에 지난날의 핵재앙론을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런 걱정이 현실로 드러나선 안된다. 국제사회는 일본을 도와야 하고 일본도 전세계의 걱정을 하루빨리 덜어줘야 한다. 지금 이 시각에도 후쿠시마 원전의 결사대는 방사능 물질과 목숨 건 사투를 벌이고 있지만 재앙의 끝이 어딘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