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주 유럽중앙은행(ECB)의 발표를 둘러싸고 시장이 보여 준 '변덕'은 그야말로 놀랄만한 수준이었다.
2일(현지시간) 통화회의를 연 ECB가 유로존 국채시장을 안정화시킬 수 있는 '즉각적인' 조치를 꺼내놓지 않자 이날 뉴욕, 유럽 증시와 3일 아시아 증시는 일제히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시장의 실망이 ECB가 유로존 국채를 시장에서 사들이는, 이른바 국채매입프로그램(SMP)을 당장 실시하기 힘들다고 밝힌데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통화정책회의에서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금리 고시 후 기자회견을 통해 SMP를 시작할 수는 있으나 ECB보다 국채 시장이 불안한 국가들이 먼저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에 국채 매입을 요청해야 한다고 밝혔다. EFSF의 국채 매입에는 여러 단서가 붙어 이를 활용하려면 추가적인 재정개혁이 필요하기 때문에 ECB가 바로 매입해주는 것 보다는 진행 여부가 불확실하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같은 말이 정반대로 해석되며 스페인 국채시장이 진정되고 증시가 랠리를 펼쳤다. 이번에 전문가들은 드라기 총재의 '모호한', 즉 개입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는 발언이 긍정적으로 해석됐다고 전했다.
특히 드라기 총재는 2일 기자회견에서 처음으로 SMP를 불태화 하지 않는 방식으로 쓸 지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ECB는 국채 매입으로 쓴 돈만큼 시중 자금을 회수해 불태화 해 왔는데, 이렇게 하지 않고 그대로 통화량이 늘어나도록 내버려둔다면 이는 미국이나 영국 중앙은행이 실시한 양적완화(QE)가 되고 파급력의 차이가 기존의 SMP와 다를 수밖에 없다.
중앙은행인 ECB가 적어도 이번 달에는 무리한 정책을 실제로 쓰지 않으면서도 무언가 조치를 취해주기 바라는 시장과 유로존 정치권의 바람을 절묘하게 충족시킨 셈이다.
2010년 봄부터 부각된 유로 위기는 유사한 사이클을 보였다. 유로존 특정 국가의 국채 금리가 급등하면 시장 불안감이 증폭되며 위험자산 투매가 발생한다. 시장 상황이 두고 볼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정책적 개입(또는 개입하겠다는 의지의 신호)이 뒤따르고 특정국 국채 금리가 낮아지며 시장이 평상심을 되찾는다. 이 사이클에서 이리저리 채인 곳이 ECB다. 유로존 정부들은 재정지출을 더 늘려 경기를 부양할 형편도 안 되고 정치적으로 까다로운 결정을 피하려 즉각적인 문제처리를 ECB에 미뤄 왔다. 반복되는 상황으로 '학습된' 시장도 상황이 촉박해지면 결국 ECB에 구원투수 역할을 바라왔다.
독자들의 PICK!
ECB는 지금까지 유로존 여려 국가의 알력과 압력을 여러 가지 묘수로 피해 왔다. 이제 문제는 시장의 기대가 있는 대로 부풀어진 다음 달이다. ECB의 내달 통화회의는 6일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