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KOTRA 공동주최, 대한민국 대표 19개 스타트업 실리콘밸리 피치

“한국의 스타트업이 이렇게 발전했는지 미처 몰랐다. 놀랍다.”
사실 처음에는 고전이 예상됐다. 아무리 한국에서 거르고 걸러진 팀들이라고 하지만, 그 까다로운 실리콘밸리의 투자자들을 단 4분만에 설득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도 익숙지 않은 영어로 말이다.
하지만 머니투데이와 KOTRA가 13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 매리어트호텔에서 개최한 “K-테크(Tech) 스타트업 IR’에 참석한 300여명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탈(VC)과 엔젤투자자, 기업 관계자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19개 한국 스타트업의 피치(투자유치를 위한 사업 발표)를 들은 투자자들은 “수준 높은 피치였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한 중견 벤처캐피탈리스트는 “최근 2~3년 동안 피치를 받은 한국의 스타트업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팀들”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실리콘밸리 스타일, 서론 없이 바로 본론으로
19개 팀은 이날 오후 행사에 앞서 오전 내내 피치 리허설로 여념이 없었다. 외우고 또 외우고, 이리저리 치고 들어올 심사위원들의 질문에 대비해 준비한 답변들도 다시 한번 점검했다.
아침 기상 알람을 게임으로 서비스하는 말랑스튜디오의 김영호 대표는 “우리는 (서비스에 대해) 확신하는데 관건은 투자자들에게 어떻게 전달하냐는 것”이라며 “절대 떨지 말자고 팀원들끼리 계속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본격 피치대회에 앞서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성공한 한국 기업가중 한명인 마이클 양 비컴닷컴 대표의 10분 스피치. 그는 인터넷쇼핑 가격비교사이트 마이사이먼닷컴을 창업해 7억 달러(약 8,200억원)에 매각했다.
그는 “’강남스타일’에 나오는 서울 강남은 맨해튼보다 크고, 빠르고, 역동적이며, 한국에서는 구글과 페이스북 같은 세계적 서비스가 카카오톡 같은 국내 서비스로부터 위협받고 있다”며 “수년 내 기업가치가 3억 달러 이상인 한국 스타트업이 많이 나오게 될 것”이라고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에게 강조했다.
드디어 피치대회 본행사. 서론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버리는 실리콘밸리 스타일답게 개회사, 축사도 없이 곧바로 소셜기반 뮤직플레이어 서비스 JJS미디어가 첫 번째 피치에 나섰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동영상과 함께 울려 퍼지더니 선글라스를 끼고 등장한 이 회사 이재석 대표가 말춤을 춘다. 투자자들도 덩달아 박수를 치며 어깨를 들썩였다. “저희 서비스는 음악을 즐기고, 그 경험을 다양한 소셜네트워크로 나눌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뒤이은 스타트업들의 피치에서도 이곳 유명 인큐베이터인 와이콤비네이터(Y-Combinator)나 500스타트업(Startups) 데모데이에서 볼 수 있는 피치방식이 선보였다. ‘당신이 현재 감수해야 하는 불편함이 무엇인지’를 앞세워 투자자들의 관심을 확 당기기는 것. 말랑스튜디오는 “오늘도 또 늦잠을 주무셨습니까? 알람이 소용 없던가요?”로 시작했고, 초음파를 이용해 쿠폰의 적립과 사용을 간편하게 만든 퍼플즈는 “바코드와 쿠폰을 이용하는데 도대체 몇 단계가 필요한지 아시나요?”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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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개팀 피치가 끝난 뒤 이어진 심사위원들의 파이널팀 발표와 이들 팀에 대한 질문. 당초 3개팀을 파이널로 선발하기로 했지만, 심사위원들은 1개팀을 추가했다. 그만큼 우수한 팀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클라우드를 이용해 컴퓨터와 모바일 디바이스 등에 자유자재로 콘텐츠를 붙여 넣을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한 ‘센텐스(Sentence)’, TV와 컴퓨터 등을 원거리 터치로 조정할 수 있는 서비스를 선보인 ‘브이터치(VTOUCH)’, 여행일정과 경로, 교통정보, 여행지 추천 등을 이용할 수 있는 앱을 개발한 아이셀소프트(ISELSoft), 모바일 기술에 기반한 무인 배달 플렛폼을 선보인 ‘파슬넷(Parcel Net) 등이 최종 선발됐다. 이 가운데 센텐스는 머니투데이와 청년기업가정신재단이 최근 개최한 제2회 청년기업가대회에서 대상을, 아이셀소프트와 브이터치는 각각 최우수상과 우수상을 수상해 이번 피치대회에 참가하게 됐다. 파슬넷은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 추천으로 출전했다.
심사위원들은 다시 이들 4개팀을 하나하나 무대에 불러 세워, 핵심고객층이 누구인지, 실리콘밸리의 비슷한 서비스들을 알고 있는지 등을 집요하게 질문했다.
실리콘밸리에서 투자자와 스타트업간 중요한 이야기는 공식행사 직후 네트워킹세션에서 많이 이뤄지는 법. 공식대회가 끝난 뒤 열린 네트워킹행사에서 투자자들은 맥주와 와인을 들고 자신들이 관심 있는 팀들을 찾아 다니며 질문을 했고, 연락처를 교환했다.

최근 2~3년래 최고수준의 한국 스타트업
대회 시작 전 19개 팀의 긴장은 대회가 마무리되면서 ‘잘 치러냈다’는 흥분으로 바뀌었다. 이런 흥분은 이들의 피치를 지켜본 심사위원들과 투자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심사를 맡았던 트랜스링크 캐피탈의 재 음 대표는 “실리콘밸리에서 15년여 VC로 일하면서 접했던 한국 스타트업들 가운데 가장 우수한 팀들인 것 같다”면서 “아이디어나 이를 전달하는 능력이 뛰어났다”고 평가했다. 심사에 참여한 마이클 양 대표도 “최근 한국 스타트업들의 피치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적이 있는데, 그때와 비교하면 이번 스타트업들의 실력이 한 차원 높다”고 말했다.
또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교육기관 럭서(LUXr)의 대리우스 던랩 파트너는 “오늘 이들의 피치는 놀라웠다(amazing)”며 “특히 한국의 많은 창업자들이 비교적 큰 기업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는 것이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에 비해 큰 강점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이날 행사에 참여한 많은 투자자들은 이들 팀들이 피치능력을 좀더 다듬고, 실리콘밸리에서 비즈니스를 일으키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다면 실리콘밸리로부터 투자를 받는 것이 어렵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SKT벤처스 류시훈 박사는 “한국에서 엄선된 팀들이 와서 그런지, 수준이 아주 높았다”면서 “프리젠테이션 기술 등 자신의 서비스와 상품을 투자자들에게 전달하는 능력을 좀더 개선한다면 훌륭하게 성장할 팀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송영길 부가벤처스 대표는 “와이콤비네이터 데모데이 피치를 보면, 실제 가진 것이 100이면 피치에서는 130으로 끌어올려 투자자들을 설득하는 반면, 오늘 한국 스타트업들은 70정도로 전달한 것 같다”면서 “하지만 몇몇 스타트업들은 기술이 아주 뛰어났고, 따로 만나 이야기 나눠보고 싶은 팀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진행을 총괄한 KOTRA 실리콘밸리 무역관 권중헌 관장은 “행사직후 만난 투자자들 대부분이 오늘 피치에 나선 한국의 스타트업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면서 “한국에서 엄선된 팀들이 충분히 준비된 상태로 실리콘밸리에 도전한다면 이곳에서 충분히 투자를 받아 비즈니스를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등 엔젤스포럼(Angels’ Forum), 벤처캐피탈라운드테이블, 개러지테크놀로지벤처스, 자프코벤처스, 포메이션8, 부가벤처스, SKT벤처스, 스틱벤처스, 스트롱벤처스 등 실리콘밸리의 VC뿐 아니라, 애플, 링크드인, 퀄컴, NASA, 인텔, 시스코, 소니, 스프린트 등 기업관계자들도 대거 참석했다.

실리콘밸리에서도 통할 것 같다는 확신
무엇보다 이날 피치의 성과는 갓 만들어진 한국의 스타트업들이 자신의 아이디어가 실리콘밸리에서도 통할 수 있음을 검증했다는 것. 나아가 실리콘밸리 VC들로부터 투자를 받고, 미국에서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확인하게 된 것.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을 장소와 시간대에 따라 자동으로 정리해주는 앱을 개발한 트리비(Tripvi)의 천계성 대표는 “실리콘밸리에 와서 가장 검증하고 싶었던 것이 ‘우리가 만든 서비스를 한국인들은 좋아하는데 과연 미국인들도 좋아할 것인가’였다”며 “이곳 투자자들로부터 많은 피드백을 받으면서, 미국인들의 필터를 가지고도 어필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실리콘밸리 인큐베이터인 해커스앤파운더즈(Hackers&Founders) 설립자인 조나단 넬슨으로부터 3개월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합류를 제안 받았다”면서 “이번 방문을 통해 생각지도 못한 큰 기회를 얻게 돼서 너무 자랑스럽고 즐겁다”고 말했다.
말랑스튜디오의 김영호 대표는 “최근 한국을 방문한 500스타트업 설립자 데이브 멕쿼러의 소개로 500스타트업 공동파트너인 크리스틴 채를 어제 만났다”면서 “자신이 우리 서비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코멘트를 다른 투자자들에게 공개해도 괜찮다는 허락을 받아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스타트업계 유명인사가 관심을 가지고 있다거나, 투자를 했다는 것 자체가 다른 투자유치나 비즈니스에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그는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조언해줄 수 있는 투자자를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말랑스튜디오는 이번 방문기간 동안 500스타트업 외에도 5군데 VC와 별도의 미팅을 가졌거나 만날 예정이다.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의 피드백이 향후 서비스를 개선하고, 비즈니스를 해나가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됐다는 소감도 많았다. 트리비 천계성 대표는 “여행지 앱을 만들면서 기능적인 측면보다, 실제 여행객들의 경험이 녹여내는 데 집중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의 피드백 역시 이와 비슷했다”면서 “우리가 세운 가설이 옳음을 확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센텐스 안지윤대표는 “투자자들을 만나면서 미국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됐고, 동시에 어떻게 하면 수익모델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에 대한 많은 아이디어와 통찰을 얻었다”며 “한국에 귀국한 뒤 이런 피드백들을 팀원들과 공유하면서 우리 서비스를 더 나은 방향으로 수정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영호 말랑스튜디오 대표는 “비즈니스모델에 집중할 것인지, 아니면 제품개발에 더 집중할 것인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이곳 투자자들로부터 피드백을 받으면서, 제품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어 브이터치 김석중 대표는 “우리가 생각하는 기술적 방향에 대해 투자자들이 정확히 짚어내는 것을 보고 굉장히 놀랐다”면서 “기술개발을 앞당기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브이터치는 이번 방문기간 동안 자신들의 고객이 될 수 있는 퀄컴과 콤케스트와 미팅이 예정돼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