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공습]엔/달러 연내 120엔? '환율전쟁' 전운

[엔저공습]엔/달러 연내 120엔? '환율전쟁' 전운

김신회 기자
2013.05.10 16:53

엔화 약세(엔저)가 가팔라지면서 엔/달러 환율이 기어이 100엔 고지를 넘어섰다. 저항이 컸던 심리적 지지선이 깨지자 전문가들은 엔저 기조가 새 국면에 들어선 것으로 판단하고, 엔/달러 환율이 얼마나 더 오를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엔화 약세가 대규모 자금 공급이 핵심인 아베노믹스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엔저가 지속되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변국의 반발은 더 거세질 전망이다. 국제 금융시장에는 또다시 '환율전쟁'의 전운이 짙어지고 있다.

◇100엔 뚫은 엔/달러 환율 연내 120엔?

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이 100엔 선을 뚫은 것은 4년 1개월 만의 일이다. 지난해 11월 초 80엔을 밑돌았던 엔/달러 환율은 같은 달 중순 아베 신조 총리의 총선 출마 선언 이후 27% 급등했다. 공격적인 양적완화 공약이 주효했다. 올 들어 상승폭은 14%나 된다. 그 사이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는 시중 통화 공급량을 2년 안에 두 배로 늘리기로 하는 등 아베의 공약을 충실히 이행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맞물린 엔화 강세(엔고)로 고전했던 일본 기업들은 쾌재를 불렀다. 엔화 가치 하락에 수출 가격 경쟁력이 세졌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실적 개선 기대감은 일본 증시로 돈을 끌어 모았고, 엔화를 팔고 일본 주식을 사는 이른바 '아베트레이드'가 추세가 됐다. BOJ가 지난달 공격적인 양적완화 방침을 천명한 이후에만 도쿄 증시 대표지수인 닛케이225지수는 60% 넘게 올랐다.

화답하듯 기업들의 실적 개선도 이어졌다. 토요타는 2012회계연도(2012년 4월~2013년 3월)에 5년 새 최대 실적을 냈고, 4년 내리 적자를 냈던 소니도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일본 제조업계에 엔저는 그야말로 뜻밖의 선물이라고 지적했다. 엔화 가치가 내리면 해외시장에서 일본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질 뿐 아니라 해외에서 거둔 수익을 일본으로 들여올 때 환차익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노무라증권에 따르면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1엔 하락(엔/달러 환율 상승)할 때마다 일본 자동차업체들의 영업이익은 2~3%씩 늘어난다. 일본 자동차업체들이 지난해 엔/달러 환율을 80엔대 초반으로 예상했던 만큼 올 회계연도 엔/달러 환율이 평균 95엔만 되면 영업이익이 30% 늘어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엔/달러 환율이 연내에 120엔까지 갈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105엔 수준에 이르는 것은 몇 개월간의 문제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앨런 러스킨 도이체방크 외환 투자전략가는 10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엔/달러 환율이 100엔을 돌파한 만큼 연말 110엔까지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엔화 환율 향방에는 BOJ의 양적완화 정책과 더불어 일본 기관투자가들의 해외 투자 속도, 미 경제 회복세 등이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했다. BOJ는 거듭 양적완화 기조를 확인했고, 일본 보험업계가 해외 투자에 나서고 있다는 점에서 엔저 기조에는 한동안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미 경제 회복세와 더불어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FRB)가 조만간 양적완화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달러 가치를 띄어 올려 엔화 약세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엔/달러 환율이 100엔을 돌파하는 데도 미 고용지표 개선 소식이 큰 몫을 했다.

◇日 수입물가 상승 등 엔저 역효과...'환율전쟁' 전운

문제는 엔저 속도가 빨라지는 게 일본 입장에서도 마냥 반길 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더욱이 일본 정부의 엔저 공세에 대한 주변국의 시선도 곱지 않다.

엔저가 일본 경제에 미치는 가장 큰 부작용은 수입 물가 상승이다. 원전사고 여파로 에너지 수입 비중이 커진 상황에서 수입 물가 상승은 무역수지 악화 요인이 된다.

이와타 가즈오 전 BOJ 부총재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엔/달러 적정 환율은 100엔"이라며 "엔화 약세가 그 이상 진행되는 것은 시장이 과민 반응하는 것으로 일본 경제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WSJ는 엔화 약세의 부작용으로 일본 장기불황의 상징인 '100엔숍'이 최근 고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100엔숍은 그동안 엔화 강세 덕분에 100엔짜리 동전 하나에 다양한 생활용품을 공급할 수 있었지만, 엔화 가치가 추락하면서 더 이상 이윤을 내기 어려워졌다는 설명이다.

각국 정부가 자국 통화 약세 경쟁에 나서는 환율전쟁 재연 가능성도 커졌다. FT는 한국은행이 9일 기준금리를 전격 인하하고, 뉴질랜드 중앙은행이 8일 이례적으로 외환시장 개입 사실을 밝히는 등 올 초 고조됐던 환율전쟁에 대한 우려가 되살아났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미 자동차업계는 의회에 일본의 엔저 공세에 대한 대책을 촉구하고 나섰다.

제너럴모터스(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 자동차 '빅3'로 구성된 미 자동차정책위원회(AAPC)는 9일 낸 성명에서 "엔/달러 환율이 100엔이라는 중대 시점에 도달했다"며 "미 의회가 이젠 참을 만큼 참았다고 말할 때가 됐다"고 밝혔다.

이어 "엔화 약세를 목적으로 하는 일본의 통화정책은 미국을 비롯한 무역상대국을 희생시켜 일본 경제를 부양하고 수출을 늘리고 있다"며 "엔/달러 환율이 오를 때마다 미국의 수출과 일자리는 줄어든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는 TPP에서 일본을 배제해야 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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