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중국이 서로를 견제하기 위해 남태평양 내 전략적 요충지로 여겨지는 섬나라들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지난 26일부터 9박 10일 일정으로 남태평양 8개국을 순방 중인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30일 피지에서 제2차 중국-태평양 도서국 외교장관회의를 주재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27일 피지를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에 참여시킨다고 선언한 직후다.
이날 왕 부장이 주재한 중국-태평양 섬나라 외교장관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서면 연설을 통해 "중국은 태평양 국가들과 운명공동체 관계를 밀접하게 만들겠다"는 뜻을 밝혔다. 시 주석은 "중국과 태평양 국가들은 서로 존중하고 함께 발전하는 전면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는 끊임없임 발전해 큰 성과를 얻었다"며 "국제정세가 아무리 변해도 중국은 태평양 국가와 의기투합하는 좋은 친구"라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2010년 10월 중국과 태평양 국가 외교장관 회의가 정식으로 설립된 후 중국과 태평양 국가는 대화를 강화하고 신뢰를 증진하며 협력을 촉진할 발판을 마련했다"며 "지역 보호와 각국의 발전, 번영은 인민의 공통된 바람이자 모두의 공통된 책임"이라고 했다.
시 주석이 태평양 섬나라들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한 것을 뒷받침하듯 왕이 부장은 27일 키리바시를 방문해 칸톤 섬의 활주로 보수 사업을 중국이 지원키로 했다고 밝혔다.
키리바시 칸톤 섬은 미군 인도·태평양 사령부가 위치한 하와이에서 3000㎞ 떨어져 있다. 칸톤 섬 활주로는 수도인 타라와와 연결되는 상업 비행용이지만, 섬 상주 인구가 수십 명밖에 되지 않아 활주로를 보수하는 이유가 따로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이 남태평양에 안보 거점을 확보해 미국과 호주에 대항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왕 부장은 타네스마아마우 키리바시 대통령 겸 외무장관과 만나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중국의 발전을 막는 데 전력을 다하면서 온갖 궁리를 한다"면서 "중국과 개발도상국의 발전과 진흥은 역사의 필연이자 정당한 권리"라고 말했다. 그는 또 "중국이 핵심이익을 수호하는 걸 개도국이 지지하는 건 개도국 스스로를 지지하는 것이며, 중국이 개도국을 돕는 것도 중국 스스로를 돕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키리바시는 지난 2019년 솔로몬제도와 함께 대만과 단교 후 중국과 국교를 맺었다. 중국은 4월 솔로몬 제도와 체결한 양자 안보 협정을 키리바시와도 추진 중이다.

왕 부장은 26일에는 솔로몬제도도 방문해 전면적 지원 구상을 내놓았다. 경찰력 구축 지원, 민간 항공 수송 협력, 기후변화 지원 등에 합의했고, 안보협력 협정에도 서명했다. 솔로몬제도는 호주 북동쪽에서 2000km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은 섬나라다. 미국의 태평양 군사 거점인 괌의 남쪽에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해 미국과 호주가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곳이다.
동티모르에서도 중국의 존재감을 커지고 있다. 중국은 동티모르의 북부~남해안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있는데, 동티모르 남해안은 호주 북부의 다윈을 마주본다. 다윈은 호주의 국방 및 안보의 중심도시로 호주의 공군기지가 있고, 미국 해병대가 주둔하고 있다. 최근 미국 정부가 다윈에 새로운 해군 기지를 확충할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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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아 공항 건설도 중국이 지원을 약속했다. 왕이 부장은 28일 사모아에서 팔레올로 국제공항과 태평양 지역 국가 종합 스포츠 경기인 퍼시픽 게임 경기장 건축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의 다음 공략 목표는 인구 10만여 명의 미크로네시아 연방이다. 미크로네시아 연방은 미국과 경제 지원을 대가로 외교와 국방을 위탁하는 '자유 연합협정'을 맺고 있는데, 협정 기한은 2023년이다. 미크로네시아의 야프 섬은 미국의 핵잠수함과 전략 폭격기가 주둔하는 괌에서 불과 700㎞ 떨어져있다.
미국은 이같은 중국 행보에 제동을 걸었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7일 "피지가 남태평양 도서국 중 처음으로 IPEF의 14번째 회원국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 견제 목적의) IPEF에 태평양 도서국이 참여하면서 지역적 다양성을 갖추게 됐다. 참여국들은 자유롭고 열린 번영의 인도태평양 지역을 위해 단결했다"고 전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피지의 결정이 태평양 섬나라를 놓고 벌어진 경쟁에서 미국에 안도를 줬다고 평가했다. 바이니마라마 총리는 중국의 대출이 자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거부하는 등 실익을 따져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