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지 오웰의 '1984'에서 국민을 감시하는 '텔레스크린'은 "작년에 비해 더 많은 음식, 더 많은 의복, 더 많은 주택, 더 많은 가구, 더 많은 그릇, 더 많은 연료, 더 많은 선박, 더 많은 헬리콥터, 더 많은 도서, 더 많은 신생아가 생산됐다. 질병, 범죄, 정신병을 제외한 모든 것이 증가했다"는 통계를 쏟아낸다. 하지만 이내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귀가 따가울 정도의 통계 수치 중 어느 하나 증명된 게 없다"고 깨닫는다.
통계는 과학적인 방법론과 검증된 표본 데이터를 바탕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중요한 창이다. 개인과 기업을 넘어 국가 단위의 미래 정책을 결정하는 중요한 도구로 쓰인다. 그래서 세계 주요국은 신뢰할 수 있고 독립성이 높은 통계전문 기관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곧잘 '거짓말'이라는 비난과 마주한다. 잘못된 조사·분석, 때로는 의도된 편향으로 누군가의 입맛에 맞는 결론을 내놓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련 등 사회주의권 국가에선 냉전 시기 체제우위를 과시하려 1984와 같은 통계를 수없이 쏟아냈다.
통계 논란을 고릿적 유물로만은 치부할 수 없다. 예컨대 중국은 국가 통계를 신뢰하기 어려운 대표적인 나라다. 31개 성급 단위 GDP(국내총생산)를 모두 더하면 중국 전체 GDP를 훌쩍 넘는 일이 다반사다. 지방 관료들이 중앙정부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으려 성과를 부풀린 탓이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2023년 6월 청년실업률이 사상 최고치인 22%에 육박하자 발표를 중단하고, 이후 재학생을 통계에서 제외해 실업률 수치를 낮추도록 '마사지'했다.
영국도 2023년 10월 응답률 급락과 데이터 품질 우려로 주요 노동통계 발표를 일시 중단했고 1년 후에는 이민자 인구 규모의 데이터 신뢰도를 인증할 수 없다고 밝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010년 이후 영국에서 총 79개의 공식 데이터 인증이 취소되거나 완전히 사라졌다"며 "독재자와 권위주의자들은 경제 데이터를 일상적으로 왜곡하거나 심지어 삭제하기도 하지만, 영국은 그런 악의가 아닌 무능으로 비슷한 결과를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에는 미국마저 위태롭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초 미국 고용지표가 둔화했다는 노동통계국 보고서에 "조작됐다"고 격분하며 노동통계국장을 해임했다. 후임인 보수 성향의 경제학자 EJ 앤토니는 1915년 시작된 미 노동통계국 월간보고서를 "신뢰하기 어렵다"며 발간 중단을 거론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10년간 거의 모든 미국 정부 통계조사의 응답률이 낮아졌다"며 보고서의 정확도 제고를 강조하면서도 독립성을 흔드는 것은 지나치다고 짚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연방정부의 인력 감축, 이민자 단속에 따른 표본 기업들의 소극적 답변 등이 통계의 정확성을 떨어뜨렸을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 듯싶다. 지난 19일에는 워싱턴DC 범죄율이 낮다는 통계가 "조작됐다"며 워싱턴 경찰을 조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미국의 통계 신뢰를 수렁으로 밀어 넣는 이 같은 행보는 무능보다 악의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