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 '생명줄' 담수화 시설 타격…이란 전쟁 '식수 위기' 번지나

걸프 '생명줄' 담수화 시설 타격…이란 전쟁 '식수 위기' 번지나

정혜인 기자
2026.03.09 11:49

[미국-이란 전쟁] 바레인 "이란 드론 공격에 담수화 시설 피해"

민간 위성 운영사인 플래닛 랩스는 1일(현지시간) 이란의 공격을 받은 뒤 바레인의 미 해군 제5함대 기지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공개했다. /AFPBBNews=뉴스1
민간 위성 운영사인 플래닛 랩스는 1일(현지시간) 이란의 공격을 받은 뒤 바레인의 미 해군 제5함대 기지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공개했다. /AFPBBNews=뉴스1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무력 충돌이 격화하는 가운데 걸프 지역 국가들의 에너지 시설에 이어 식수 공급 핵심인 해수 담수화 시설이 파괴됐다. 이번 전쟁이 원유에 이어 물 전쟁으로 이어지면 민간인 피해가 한층 커질 거란 우려가 확산됐다.

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바레인 정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자국 해수 담수화 시설이 이란의 드론(무인기) 공격으로 실질적인 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바레인은 "이란이 민간 시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란 측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아바스 아라치 이란 외무장관은 전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미국이 먼저 걸프만 키슘섬에 있는 이란의 담수화 시설을 공격했다. 이런 선례를 만든 건 이란이 아니라 미국"이라고 주장했다. 중동 지역을 담당하는 미 중부사령부 대변인은 이란의 이런 주장을 부인했다.

이스라엘 매체 와이넷은 앞서 이스라엘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아랍에미리트(UAE)가 이란의 미사일·드론 공격 이후 이란 영토 내부의 담수화 시설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고 보도했다. 와이넷은 "이스라엘은 이 공격이 이란 정권에 보내는 의도적인 경고성 신호라고 평가한다"며 "이란의 공격이 더 격화할 경우 UAE가 제한적 수준의 군사 작전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UAE는 이번 전쟁 발발 전까지만 해도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對)이란 공습에 반대하는 태도였다. 하지만 전쟁 발발 후 이란의 대미국 보복이 UAE로 집중되자, 태도를 바꿔 참전 가능성을 시사해 중동 전면전 우려를 키웠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해수 담수화 시설 /AFPBBNews=뉴스1
사우디아라비아의 해수 담수화 시설 /AFPBBNews=뉴스1

걸프국·이스라엘 등 담수화 시설에 의존

이처럼 걸프 친미국가는 물론, 이란도 담수화 시설 피해를 입으면서 이란 전쟁의 공격 대상이 군사시설을 넘어 에너지(원유) 시설, 민간 인프라 시설로 급격히 확대되는 양상이다. 이번 전쟁이 중동 식수 위기로 이어질 거란 우려를 낳는 이유다.

사막 기후인 걸프 지역 국가들은 해수를 식수로 바꾸는 담수화 시설에 식수 공급을 대부분 의존하고 있다. 담수화 시설이 없으면 물 공급이 중단돼 이 지역 대도시가 사실상 붕괴할 수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WSJ에 따르면 중동 지역은 전 세계 담수화 용량의 40% 이상을 차지한다. 중동 산유국 6개국으로 구성된 걸프협력이사회(GCC)에서만 400개 이상의 담수화 시설이 가동 중이다. 이번 공격이 발생한 바레인은 인구 160만 명의 식수를 거의 전적으로 담수화 시설에 의존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쿠웨이트 역시 각각 전체 식수의 약 80%, 전체 물 수요의 90%를 담수화에 의존한다.

걸프 국가들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전략적 물 비축량을 보유하고 있지만, 바레인 등과 같은 소규모 국가들의 보유한 비축량은 며칠 내로 고갈될 수 있다고 WSJ는 전했다. 미국 싱크탱크인 아랍걸프국가연구소의 후세인 이비시 선임 연구원은 "(담수화 시설 공격은) 걸프 국가의 정말 치명적인 급소를 건드린 것"이라며 "이 담수화 시설들은 걸프 국가들의 에너지 인프라보다 더 취약한 '아킬레스건'과 같다"고 평가했다.

한편 걸프국 담수화 시설 타격에 일본이 특히 긴장하고 있다. 담수화 시설은 일본과 중동 협력의 핵심축 중 하나다. 그간 일본이 내세운 '고품질 인프라 협력'의 상징적인 성공 사례인 데다 일본의 에너지 안보 정책과도 직결되는 중요 협력 분야로 여겨져 왔다. 도레이, 닛토덴코, 도요보 등 일본 화학·소재 기업과 종합상사 그리고 정부계 금융기관은 민간 협력 형태로 걸프 지역의 담수화 사업을 추진해 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중동 담수화 시설 타격은 일본 관계자들에도 충격을 주고 있다"며 "석유·가스 시설에 이어 그간 금기시됐던 물 자원 관련 민간 인프라 파괴가 계속될 경우 사태는 더 통제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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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부 정혜인 기자입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눈에 띄는 흐름을 포착해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마음과 시대의 이야기 '트민자' 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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