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희식 국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소장

지난해 10월 다카이치 사나에 현 일본 총리가 당시 자민당(자유민주당)의 새 총재로 선출되자 한국에선 의심, 불안, 우려의 분위기가 컸다. 그가 극우인사로 분류됐기에 조만간 독도 망언이나 야스쿠니신사 참배 도발이 이어질 것이라고 봤다. 이보다 4개월 앞선 6월 초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되자 일본 미디어는 일제히 한일 관계가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이 대통령이 반일(反日) 정치인이라고 주장하며 부정적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2026년 현재, 한일 관계는 그러한 우려와 달리 상당히 순항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 정상회담이 이뤄지는 등 정상들 간에 신뢰가 쌓이며 셔틀외교가 이어지고 있다. 최희식 국민대학교 일본학연구소장은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한일 양국은 당초 서로 기피했던, 의심과 불안을 갖고 있던 정부가 들어섰으나 실질적으로는 관계 관리가 상당히 잘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최 소장은 "기존 국내 외교·안보 정책의 양극화 상황 속에서 이재명 정부의 실용외교가 균형을 이룰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며 "지금 한일 관계의 안정적 관리는 한국 외교의 안정성에 공헌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라=뉴시스] 고범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14일(현지 시간) 나라현의 대표 문화유적지인 호류지에서 열린 친교 행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6.01.14. bjko@mewsis.com /사진=](https://thumb.mt.co.kr/cdn-cgi/image/f=avif/21/2026/04/2026041512172234180_2.jpg)
최 소장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이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로 내달리는 상황에서 미국의 동맹국들인 한국과 일본은 서로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일본의 경우엔 중국과의 관계 악화 등 외교적 어려움들이 있는 상황에서 한국과 잘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한국은 이 대통령이 실용주의를 표방하면서 일본과의 관계를 안정화하려고 했다. 이러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한일 관계가 지금처럼 안정된 상태에 이르렀다.
최 소장은 한일 관계 안정이 양국 외교의 전략적 자산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한일 관계는 갈등이 심화한 국면이었는데 양국은 미국의 지지를 얻기 위해 각각 워싱턴으로 향했고, 미국은 양국 갈등을 지렛대 삼아 한국과 일본으로부터 실익을 챙겼다. 그러나 최근에는 한일 관계가 안정되며 미국이 한일 사이에서 이용할 만한 갈등 거리가 사라졌다. 그래서 양국 모두 미국과의 통상 협상에 집중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비교적 나은 협상 환경을 만들 수 있었다.
중국 역시 과거 한일 갈등을 활용하는 접근법을 자주 취해 왔다. 최근에도 중일 갈등 국면에서 중국은 매우 적극적으로 역사 문제 등에 대해 한국을 회유하려는 흐름을 보였지만 한일 관계가 안정되다 보니 그러한 중국의 노력도 헛수고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였다. 최 소장은 "가장 싫어했던 정부들이 만났는데도 관계가 양호하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과 일본이 자국 외교의 안정성을 높이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이재명 정부의 실용외교가 기존의 양극화 됐던 외교·안보 정책의 균형점(Equilibrium)을 마련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기존까진 한쪽은 억제력에 가치를 두고 이를 확보하기 위한 외교 전략 노선을 택하면서 북한·중국과 갈등하는 면이 있던 반면 또 한쪽은 평화의 가치를 우선시하기 때문에 양측이 정면으로 충돌해 왔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는 억제력을 확보하기 위해 일본과의 관계도 안정화하고, 한미동맹도 발전시키며, 한미일 관계도 지속적으로 끌고 가겠다고 했다. 동시에 평화라는 가치를 위해 북한과의 평화 공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 소장은 "이재명 정부가 실용외교를 표방하면서 양극화된 상황 속에서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외교적 모습을 보여줬다는 측면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또 "양극이 일정 정도 수렴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 억제력과 평화라는 두 개의 가치가 결코 상극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얼마든지 추구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중간점을 형성할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덧붙였다. 이어 "지금 한일 관계의 안정적 관리는 한국 외교의 안정성, 그리고 한국 정치 양극화 상황에서 균형을 형성하는 일종의 수렴(收斂)에 큰 공헌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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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소장은 최근 일각에서 강조하는 한일의 '중견국 연대' 논의에 대해 국제정세가 초불확실성의 상황에 빠져 있고, 한국과 일본이 비슷한 경제 구조를 갖고 있어 잠재력은 충분하다고 평가하면서도 "한일 양국이 곧바로 적극적 협력 단계로 나아가기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서로 신뢰하지 못했던 상대끼리 지금 만난 것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한일 관계가 부침을 겪었던 시기도 매우 길었고, 아직까지 상호 불신이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최 소장의 분석에 따르면 지금 당장 미국의 통상 압박, 관세 전쟁에 한일이 공동 대응하기는 어렵다. 이 문제에 대해 한일이 연대하면 미국에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고, 오히려 미국이 더 강하게 나올 수 있다. 게다가 해당 분야에서 한국과 일본은 경쟁 관계에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각자 대응할 수밖에 없다.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각자 석유를 확보해야 하는 경쟁 상황에 있기 때문에 적극적 협력은 쉽지 않다.
최 소장은 "적극적 협력이 없다고 해서 지금의 한일 관계 수준이 낮은 것은 전혀 아니다"라며 "적극적 협력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고, 그에 앞서 어느 정도 신뢰가 축적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미중 패권경쟁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 중간국 또는 중견국으로서 서로 연대가 만들어질 수 있는 토대를 지금 만들어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덧붙였다.
최 소장은 한일 중견국 연대가 실현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은 먼저 한일관계가 좋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시점에, 서로 바라지 않았던 상대가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관계가 좋아졌다는 긍정적 집단 경험을 계속 축적해 나가면서 신뢰의 토대를 만들어가는 것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또 "현재 한일은 갈등을 증폭시켜 관계가 갈등 상황에 빠지는 것은 피하고 싶다는 마음은 분명하다"며 "따라서 지방 교류, 문화 교류, 경제 협력 등을 진척시키는데 주력하고, 외교·안보의 큰 문제에 대해서는 지속적 소통을 통해 협력을 모색하는 정도가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이어 "한일 관계를 파탄시킬 수 있는 갈등을 억제하면서 협력을 계속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관계를 안정화하는 것이 지금 한일 관계가 지향해야 할 본모습"이라며 "이러한 집단 경험이 축적돼 신뢰가 두터워진다면 언젠가는 이를 기반으로 중견국 연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민대학교 일본학연구소는 한일 관계를 지속적으로 연구해 왔다. 1965년 한일협정 관련 외교 문서를 정리·분석하는 작업과 이후 한일 관계에 대한 외교 사료 연구를 오랫동안 진행해 왔다. 한일 관계가 주 연구 분야이기에 한일 관계 전공 연구자들이 많고 그동안 정부의 한일 관계 정책에도 많은 참여를 해왔다.
한일 간 연구 네트워크를 쌓기 위한 노력도 기울여 왔다. 오는 22일에는 머니투데이와 공동주최로 일본 연구자들을 초청해 지방소멸 위기 해법 등을 한일이 공동으로 모색하는 '공통의 위기, 공동의 대응: 한일 공통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세미나'를 연다.
최 소장은 "한일 간 시장·시민사회는 정부 간 갈등만 없다면 스스로 성장하는 구조이나 갈등이 생기면서 그 생태계가 파괴돼 왔다"며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시장과 시민사회가 주도하는 자생적 협력 생태계가 깨지지 않도록 갈등을 관리하고 필요한 분야에서는 새로운 협력 생태계를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정부의 역할은 갈등을 잘 관리해 민간 협력의 기반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고, 아직 생태계가 형성되지 않은 분야에서는 협력 플랫폼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최 소장은 국민대 일본학연구소 역시 이러한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그는 "정치·외교뿐 아니라 저출산·고령화, 지역 재생 등에서 한일 협력 과제를 발굴하고, 이에 맞춘 한일 연구자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며 "학자들뿐 아니라 언론인, 외교관, 정치인들과 전문성을 공유해 보다 실속 있는 한일 교류가 가능하도록 돕는 것이 연구소의 역할"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