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모닝 인사이트] 니얼 퍼거슨 스태퍼드대학교 후버연구소 선임연구원·리사 클라센 옥스퍼드대학교 인터넷연구소 연구원·에릭 슈미트 전 구글 최고경영자(CEO), 포린어페어스 기고문 'AI의 제국'

미국과 중국 중심의 인공지능(AI) 패권 경쟁은 제국주의적 속성을 띠고 있으며 결국 막대한 비용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가 승패를 결정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역사학자인 니얼 퍼거슨 스탠퍼드대학교 후버연구소 선임연구원, 리사 클라센 옥스퍼드대학교 인터넷연구소 연구원, 에릭 슈미트 전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 공동 기고문 'AI 제국(Empires of AI)'에서 "미국과 중국은 첨단 AI 모델과 반도체, 물리적 인프라, 자본을 통제하면서 영토가 아닌 지식정보를 지배하는 새로운 제국을 구축하고 있다"며 "패권 경쟁의 승패는 범용인공지능(AGI)을 먼저 개발하는 기술력이 아니라 경쟁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지속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능력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저자들은 AI가 막대한 희소자원과 자본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제국주의적 속성을 지닌다고 평가했다. 첨단 AI 개발에는 막대한 컴퓨팅 자원과 전력, 첨단 반도체, 핵심 광물, 자본 등이 필수적이다. 이로 인해 관련 자원을 확보한 소수 국가에 권력이 집중되고, 나머지 국가들은 이들에 대한 기술적·경제적 의존도가 높아진다. 특히 미국과 중국 등 중심부 국가들이 주변부에서 자원과 노동력을 확보하고, 이를 고부가가치 기술로 가공해 판매한다는 점에서 과거 제국주의 경제체제와 유사하다는 설명이다.
주요 AI 기업들 역시 과거 영국과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처럼 제국주의 질서를 형성하고 있다고 짚었다. 거대 AI 기업들은 AI 모델과 데이터, 컴퓨팅 자원을 통제하면서 각국 정부로부터 기술 접근권과 투자, 에너지 공급, 규제 완화 등을 확보한다. 나아가 이들은 자국 정부의 외교·안보·산업 전략과 긴밀히 연계돼 주변국들이 중심부 국가의 기술 생태계와 규칙을 따르도록 유도하는 첨병 역할을 한다고 봤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AI 제국을 구축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미국은 민간기업과 자본시장을 중심으로 첨단 AI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오픈AI와 앤트로픽 등 기업들이 연구개발과 자본 조달을 주도하고, 정부는 수출통제와 규제 등을 통해 국가적 이익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반면 중국은 국가 차원의 산업정책과 금융 지원을 바탕으로 AI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양국은 기술 확산 전략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미국은 고성능 반도체와 폐쇄형 첨단 AI 모델, 클라우드 서비스를 중심으로 기술 생태계를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의 수출통제와 기술 사용 제한에 대한 협조를 요구한다. 중국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하드웨어와 AI 모델을 활용해 기술 보급을 확대하고 글로벌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는 설명이다.
저자들은 양국 모두 AI 패권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핵심 자원에서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풍부한 전력 공급 능력과 희토류 산업에서 강점을 갖고 있지만, 최첨단 반도체의 자체 생산 능력은 부족하다. 미국은 첨단 반도체와 AI 모델에서 우위를 확보하고 있지만, 핵심 광물 공급망과 노후화된 전력망이 약점으로 지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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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패권 경쟁의 가장 큰 리스크로는 재정 부담을 지목했다. 과거 제국들도 외부의 적에게 패배하기보다 과도한 팽창과 유지비용 때문에 쇠퇴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늘날 AI 산업도 인프라와 기술 개발에 필요한 투자 규모가 커지면서 장기적으로 패권 유지 비용이 막대한 재정 부담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주요 AI 기업들은 2026년 6000억달러(약 800조원) 이상의 설비투자를 계획하고 있으며, 상당 부분이 AI 관련 인프라 구축에 투입된다. 중국 역시 국가 주도로 향후 5년간 약 2950억달러(약 400조원)를 투입해 자국산 반도체를 활용하는 전국 데이터센터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미국과 중국 모두 AI 투자 이전부터 상당한 부채 부담을 안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사회보장과 의료복지 지출 증가 등으로 연방 재정적자가 약 2조달러(약 2680조원)에 이른다. 중국은 지방정부의 부동산 및 인프라 투자 과정에서 대규모 부채가 누적됐다. 양국 모두 저출산과 고령화로 재정 부담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AI 산업에 추가적인 자본을 투입해야 하는 구조다. 저자들은 "제국의 지속 가능성은 결국 제국을 유지하는 비용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AI 제국 쇠퇴에 대해서는 4가지 시나리오가 제시됐다. △중국이 저렴한 AI와 제조업 경쟁력으로 미국을 추월하는 경우 △막대한 AI 투자로 재정 부담이 한계에 이르는 경우 △독점기업의 지대추구와 과도한 규제로 기술혁신이 정체되는 경우 △AI에 대한 사회적 반발과 통제 불가능한 AI로 인한 혼란 등이다.
AI 제국 간 충돌 위험을 완화하기 위한 대안으로는 'AI 데탕트'를 제안했다.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이 핵무기 군비통제 협정을 체결했던 것처럼 사이버 공격이나 생물학적 설계에 악용될 수 있는 AI 모델 공개를 제한하고 이를 위한 공동 기준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합의 이행 여부를 검증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지만, 위험한 AI 활용 범위와 금지 기준 규정만으로도 갈등과 충돌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저자들은 "AI는 역사상 가장 많은 자본이 투입되는 제국적 사업으로, 미국과 중국은 과거 제국들이 쇠퇴의 길을 걸었던 것과 유사한 위험을 안고 있다"며 "결국 AI 제국의 미래는 막대한 자원과 권력을 둘러싼 제국주의 경쟁을 어떻게 통제하며 국제사회의 공존과 지속 가능한 질서로 전환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