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2차 협상에서 EU가 제시한 상품 개방안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향후 협상에 험로가 예상된다.
자세히 뜯어보면 '전향적'이라는 기존 평가가 무색하다. 여기에 개념마저 생소한 각종 요구안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있어 우리측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우리측 개방안이 보수적?= 김한수 수석대표는 지난 10일 2차 협상 준비현황 브리핑에서 우리측 개방수준을 "EU측에 비해 보수적"으로 평가하며 EU가 불만을 제기할 수 있음을 예고했다.
우려대로 협상 첫날부터 우리측 상품 개방안에 강한 불만이 터져나왔다. 개선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개방 수준을 '후퇴' 시킬 수 밖에 없다며 압박했다.
양측이 제시한 개방안 수치를 보면 EU 측 입장이 이해된다. EU는 교역액 기준으로 즉시 또는 3년 내 관세철폐 비율이 80%에 달했지만, 우리 측은 60% 가량에 그쳤다.
하지만 속내를 살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EU가 제시한 80% 중 52%는 이미 무관세 혜택을 받고 있다. 반면 우리측은 60% 중 무관세 혜택을 받고 있는 비중이 26%에 불과하다.
EU가 실제 관세를 조기철폐하는 비율은 28%에 그친 반면 우리측은 34%에 달한 셈이다. 관세가 있는 품목 중 3년 내 관세철폐 비율 역시 우리 측이 57.1%로 EU 측 56.1%로 높다는게 산자부 설명이다.
산자부 관계자는 "한·미 FTA의 경우 양측의 무관세 비율에 큰 차이가 없어 오히려 협상하기가 쉬었다"며 "하지만 EU는 28%를 갖고 생색내기를 하며 우리측 개방 수준을 높이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리한 비관세장벽 요구= 조기철폐 비율 80%도 모두 비관세장벽과 연계했다. 관세 양허에 비관세를 연계하는 것은 FTA에서 좀처럼 보기 어렵다. 한·미 FTA의 경우 관세는 관세, 비관세는 비관세로 별도의 협상이 이뤄졌다.
비관세장벽 협상에서도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를 하고 있다. 예컨대 우리의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의 경우 EU 측이 유엔 유럽경제위원회(ECE)의 120개 기준 중 안전벨트 기준 등 102개를 유럽식으로 해달라고 요구했다. 조건이 충족될 경우에만 7년 내에 관세를 철폐하겠다고 의미다.
독자들의 PICK!
관련 부처인 건교부와 환경부는 이에 대해 난색을 보이고 있다. 우리 측도 이에 대응하기 위해 자동차 배출 기준 완화 요구 등을 요구했지만, EU 측은 "한국만 예외로 할 수 없다"며 거부했다.
협상단 관계자는 "EU가 미국과 자존심을 건 표준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에 비관세장벽을 특히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EU는 또 위생검역 분야에서 '동물복지'라는 새로운 개념을 내밀었다. 가축 사육 공간을 넓히고 도축 전 일정시간 학대하지 말도록 하는 등 동물 복지권을 보장해 주자는 것이다.
이 밖에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음악을 틀면 공연으로 간주해 저작권료를 물게 하는 '공연보상 청구권'과 미술작품이 경매로 팔릴 때 이익의 일정 부분을 저작권자에게 나눠줘야 한다는 '추급권'까지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해 우리 측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